조회수 15 작성자 아이**04 등록일 2026-07-24 좋아요 0
도서명2026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빛이 될 때
저자권희정, 김영락, 민경, 수연, 안시아, 엄다솜, 이민혁, 정솔,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스타벅스에서 만나요
상담을 마친 후, 나는 펜을 천천히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느슨해진 어깨를 의자에 기대며, 자연스럽게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순간 서둘러 일어나 숄더백을 둘러맨 채 급히 스타벅스를 향해 나섰다.
며칠 전에 아는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은 젊은 청년이 밥마다 불안증세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초조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 청년이 폭력 가정에서 자랐어요.”
목사님은 한참 말을 망설이다 어렵게 상담 비용 이야기를 꺼내시며 무척 미안해했다.
폭력 불안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청년에 대한 목사님의 관심이 전해져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스타벅스에 도착하여 서둘러 입구를 찾아 들어갔지만 다시 밖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유리창 너머에 비춘 그림자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추었다.
흰 지팡이를 들고 입구를 찾아 헤매는 젊은 시각 장애인이 보인다. 차마 돌아설 수 없어 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청년은 당황스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아 네, 네.”
나는 그의 손을 이끌어 내 팔꿈치를 잡게 한다. 그리고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시끄러운 사람들 틈을 지나 빈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돌아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아 김 선생 깜박하고 말씀 안 드린 게 있어서요. 그 소개한 분이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을 못했네요.”
그 순간 나는 폰을 천천히 내리며 고개를 돌려 낯설지 않은 시선으로 홀로 앉아 있는 시각장애인의 얼굴에서 흰 지팡이로 시선이 옮겨진다.
나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불안하게 눈동자가 흔들린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는 투덜투덜거리며 정거장으로 엄마를 마중 간다. 저만치서 엄마의 모습이 사람들 사이에서 보인다. 물론 흰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걸어오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창피한 마음에 엄마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누가 볼까 싶어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그러면서 제발 나 좀 부르지 말라고 짜증을 부리며 다음부터는 전화해도 마중나오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미소만 지을 뿐이다. 젊은 그녀의 옆 얼굴에 스치는 절망과 슬픔을 외면한 채 소녀는 땅만 보고 걸었다.
어둠 속 두 사람의 실루엣이 가로 등불 사이로 흔들렸다.
성인이 된 나는 회색빛으로 내려앉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감에 뒤를 돌아보면 과거 속 어린 소녀가 저만치서 속옷 바람에 달려오고 있다. 나는 흔들리는 눈망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어둠이 내리면 밤하늘에 별들이 펼쳐진다. 아빠의 폭력으로 죽고 싶었던 그날도 별들은 반짝였다. 좁은 골목길을 내달리며 숨을 곳을 찾던 암흙 속에서도 공포로 몸이 떨리던 그날도 별은 빛났다.
어린 소녀는 칠흑같은 이 밤을 살기 위해 달린다. 어둠에 잠긴 길은 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
오늘도 달리고 내일을 생각하면 무서운 세상이 어깨를 짓누른다.
얼어붙은 발이 긴장감에 떨어지질 않는다. 어디로 달려야 할지 망막한 불안 속에서 어린 소녀가 위태롭게 서 있었다.
어린 소녀는 문득 멈추어 나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는 촉촉한 눈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소녀는 공포감에 술 취한 아빠가 자신을 쫓고 있는지 초조하게 어두운 골목길을 바라보며 떨고 있다. 난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캄캄해서 길을 찾을 수가 없어. 사방이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어 무서워.”
“너무 겁이 나서 앞이 보이지 않는 엄마를 두고 왔어. 숨이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달렸어. 나 없으면 엄마는 어떡해.”
나는 복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말한다.
“괜찮아 죄책감 갖지마. 니가 감당하기에는 넌 너무 어려.”
“포기하지 말고 달려야 해.”
“반드시 빛이 있을 거야.”
“어둠속에서도 빛을 찾아야 해.”
“그건 생명이고 영혼이야.”
“반딧불 같은 작은 빛이라도 보이면 그 빛을 향해 무조건 그 빛만 바라보고 걷는 거야.”
“어둠을 보지 마, 오직 빛만 바라보며 걷는 거야.”
“그래야 길을 찾을 수가 있어.”
“내가 함께 있어줄게. 널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나는 너의 빛이 될거야.”
달빛이 소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속에서 반짝였다.
어둠속에서 반딧불 하나가 날아올라 별모양을 그리며 꼬리를 흔든다. 소녀는 그 반딧불을 잡으려고 달리며 “깡총깡총” 손을 뻗어보지만 돌뿌리에 부딪쳐 앞으로 ‘꽈당’ 넘어지고 만다. 갑자기 주변이 뿌해지며 빗자루를 탄 마법사 할머니가 눈썹을 씰룩씰룩거리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어머나! 마법사 할머니다.”
눈물로 얼룩진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법사 할머니는 한심하다는 투로 “쯧쯧쯧, 멍청하게 언제까지 앉아서 울고 있을 게냐.”하며 마법사 할머니는 빗자루 위를 가리킨다.
소녀를 태운 빗자루가 하늘을 향해 떠 오르고 두 사람 위로 태양이 붉게 빛난다.
슬픔을 잊은 채 소녀는 벅차 오르는 기쁨으로 태양을 향해 환호성을 지른다.
“야호! 멋지다.”
소녀는 꿈을 꾸고 있다.
‘내일은 피터팬을 만날거야’, 그리고 ‘이상한 나라에 엘리스도 만나고, 수많은 주인공을 만날 거야.’
“나도 나의 주인공이 될 거야!”
나는 안정감을 되찾고 천천히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상담사입니다.”
나는 가슴으로 말한다.
‘나 역시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것처럼, 당신에게도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을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릴게요.’
‘빛은 당신 안에서 세상으로 이끌어 그 빛이 생명을 감쌀 거예요. 그 빛이 생명을 살릴겁니다. 내 안에 빛이 흔들림 속에서도 하는 일이죠.’
나는 앉아있는 의자를 테이블 가까이 당기며 그 청년에게 따스한 미소를 짓는다.
* 2026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참여자가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