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9 작성자 아이**04 등록일 2026-07-24 좋아요 0
도서명2026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빛이 될 때
저자권희정, 김영락, 민경, 수연, 안시아, 엄다솜, 이민혁, 정솔,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나는 괴물을 사랑하기로 했다
살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가 48세가 되어 있다.
내 나이가 이 정도 먹었다고 말하면 주변에 자주 보던 이들이 깜짝 놀란다.
“허 참 자기들 나이만 먹나.”
지금까지 걸어온 날들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는데 너무 많이 땅을 파고 쓸데없는 짓 많이 하고 살았구나 후회가 될 때가 있다.
내 운명을 불운에서 행운으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말할 수 있고 계속 이어지는 현실을 마주한다.
첫째 딸로 태어나서 부모님이 무지 애지중지하며, 나를 사랑으로 키우셨다고 했는데 한 살 터울 여동생과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남동생 우리 가족은 모두 다섯 식구였다.
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내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기 시작되고 있었다.
미진이랑 잘 놀던 내가 어느 날부터 구토도 하고, 열도 심하게 나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단순한 감기일거라 생각하고 나를 동네 병원에만 데리고 다녔다.
그 누구도 내 머릿속에 괴물이 잠을 자고 있을 거라는 것은 못한 채 말이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조금씩 괴물이 자라며 언제 본 모습을 드러낼지 시간을 세고 있었다.
“여보 미영이가 이상해요.”
“왜 여보?”
“이것 봐 미영이가 더듬거리며 손 뻗는 모습 좀 보라구. 이상해 보이지 않아?”
미진이가 내가 가지고 놀던 못난이 인형을 빼앗아 저 멀리 가버렸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서럽게 울었다.
“이 녀석아 왜 가만이 있어 왜 울어?”
“너도 인형 뺏어와.”
미진이에게서 아버지는 못난이 인형을 뺏어다가 나에게 주었다.
“자 여기 있다.”
어설픈 손을 뻗으며 나는 아버지에게서 장난감을 받는다.
이 못난이 인형만큼 내 인생이 구겨진 종이처럼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를 따라서 손 붙잡고 텃밭에 가는데, 내가 넘어진다.
“미영아 왜 자꾸 넘어지는 거야 잘 좀 따라와.”
땅바닥에 나는 흙먼지와 자주 친구하고 싶었다.
내 머리에서 불덩이처럼 열이 나기 시작하고 구토도 심해지고 눈도 안보이기 시작했다.
괴물이 조용히 얼굴을 들기 시작했다.
괴물은 조용히 일어나 어두운 동굴을 막 흔들고 부시기 시작한다.
부모님은 나를 대학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다행히도 교회에 세브란스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아가씨의 소개로 수월하게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뇌 MRI 검사를 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친 후 의사가 진단 결과를 말해준다.
“심각합니다. 당장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수술 안 하면 이 아이는 죽습니다.”
“뭐라고요? 내 아이가 어떻다고요? 말도 안돼요.”
깜짝 놀란 배부른 어머니는 그때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악성 뇌종양이 아이 머릿속에 있어서 생명이 위독합니다.”
“아이고야 내 딸이 악성 뇌종양이라니.”
평범한 다섯 식구의 일상은 조금씩 비틀어지고 어긋나져 가고 있는 듯했다.
불행의 씨앗이 조금씩 퍼져만 가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아니 내 머릿속 괴물은 나를 흔들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흠집을 내었다.
시간을 다투는 한시가 급한 그날 속에 나의 목숨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서둘러 난 대머리가 되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 잠이 들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작은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잠들어 누워 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수술을 마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와서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수술실 밖에서 볼품 없고 헤진 임신복을 입은 배부른 어머니는 노심초사하며 목마른 목구멍에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실 밖으로 나와서 어머니에게 말한다.
“조금만 늦었으면 아이는 죽었어요. 다행히 수술은 잘 됐습니다.
여기 뇌하수체 이 부분에 악성 뇌종양이 있어서 떼어 냈습니다.
다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더는 손을 대면 생명이 위독해지기 때문에 그 부위는 방사선 치료로 굳게 할게요.”
20세 정도에 재발 위험도 있어서 지켜봐야 한다고 의사가 얘기도 하였다.
의사 설명을 들은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내 딸 살았네하고 안도감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섰던 나는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어느 정도 쓰러뜨렸다.
동굴 속에서 괴물이 밖으로 뛰쳐나올 준비를 하고 움직였더니 그 낌새를 알아채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고요히 잠든 어두운 밤에 기습을 하여 칼을 휘둘렀다.
밖에서 칼을 든 사람들이 동굴을 자르고 괴물이 있는 곳에 쳐들어가 정교한 싸움을 하고 물리치고 나서 그 동굴을 닫았다.
“죽어라 이 괴물 너는 이 동굴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지만 다시 올 기회를 노린다.
간호사가 6인실 입원실에 들어와 말한다.
“자 미영아 엎드려야지.”
나는 침대에 엎드려 내 엉덩이를 쭉 올린다.
간호사가 똥꼬 속에 수면제 약을 집어 넣자 나는 스르르 잠이 든다.
꿈속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어 아직 다 죽지 않은 괴물을 만나러 지하실에 내려간다.
누구의 운명의 장난이었기에 동굴 속에 괴물을 살게 했을까?
초대받지 못한 괴물이 억울해하며 울부짖는다
배부른 어머니는 잠든 나를 지하 빨간 방사선실로 데려간다.
괴물이 거의 힘을 못쓰고 약해질 때까지 어디 두고 보자.
어두운 동굴 속 신비의 세계가 펼쳐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을 마구잡이로 부술 수는 없고 조용히 그 안을 비춘다.
“어 여기 임산부는 출입하면 안돼요.”
나의 보호자는 어머니뿐이고 아버지는 가게에서 일을 하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나 때문에 한 살 어린 미진이는 남의 집에 맡기고, 뱃속에 동균이는 나 아픈 죄로다 못 볼 구경을 한다.
그렇게 추운 겨울 세브란스 대학병원에서 3달째 입원해 있으며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병원 유리문 옆에 서 있는 나무에서 징글벨 벨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온다.
어렴풋이 내 기억 속에 들리는 그 소리가 한겨울 그래도 따뜻한 온기를 만든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면서 3살 때의 일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생각이 나나보다라고 신기해 하신다.
침대 옆 서랍 속에서 치즈 한 장을 꺼내어 물 마른 밥 위에 얹어서 내 입에 넣어 주던 어머니의 손길에 나는 조용히 입을 벌려 받아 먹었다. 그 생각도 난다고 했더니 더 신기해하신다.
밥도 못 사 먹고 겨우 간호실 주방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 먹고 끼니를 채우고 “옷 좀 사 입으세요.”하는 간호사의 섭섭한 말에 서러운 말 못할 어머니의 사연도 세월 속에 잔잔히 묻혀 가 버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작은 아이는 여기저기 부닥치며 걸어다니고, 하얀 손수건을 입으로 물어 뜯기도 하고 휠체어에 손가락이 끼어서 아프다고 울기도 하였다.
내 침대 옆에서 매일 기도와 찬송을 부르셨다는 어머니.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있던 내가 천장을 손으로 휘저으며 가리키며 말한다.
“저거 뭐야, 뭐야”
희미하게 비친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내 눈에 신기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서히 시력을 되찾는 미영이가 있었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 딸이 조금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어린 나의 손을 붙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반 맹인으로 사는 운명의 나는 어설픈 수채화 물감 속에서 나만의 그림을 상상하며 그려나간 삶을 살게 된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누구도 이해 못할 나만의 그림은 괴물도 같이 잠들어 있다.
세력이 약해진 괴물과 동거하는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아니한 것이다.
내가 괴물과 친해지고 훈련시키고 했던 과거의 옛 이야기를 해보자면 쉽지 않은 것이다.
괴물과 만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8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입학한 곳은 1시간이 걸릴 만큼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2학년까지는 어머니가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였고 3학년부터는 나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왜 이런 먼 곳의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생들이 집 가까운 학교에 입학해서 다니는 것을 보고 나는 다른 학교를 다니는 것이구나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너가 눈이 나빠서 이 학교에 갈 수밖에 없다’라는 설명도 하지 않았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냥 묻어가는 느낌으로 학교를 다닌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려고 집 밖을 나섰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그 하루의 아침을, 나만 아는 공포의 기억 속 사건이 생각난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비가 내리고 있는 어느 아침 날, 번잡한 도시 속 풍경의 바쁘게 돌아가는 평범한 날 아침이었다.
비가 오기에 창문은 뿌옇게 흐리고 덜컹이는 의자와 꽉 찬 사람들로 버스 안은 비좁았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나는 어느 낯선 곳의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내가 늘 내리던 익숙한 그 버스 정류장의 풍경은 어디로 가고 없고 복잡한 도시의 어수선한 낯선 곳이 당황스럽다.
너무 놀란 나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라 길을 서성이며 거기서 그냥 눈물을 흘렸다.
대책 없이 덩그러니 던져진 장난감처럼 난감한 기분으로 낯설고 무서운 마음이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참이었다.
그때 길 지나던 어떤 사람이 나를 발견한다.
“얘야 왜 우니?”
번잡한 도심 속 시끄러운 자동차들 소리에 하늘은 흐린 아침 축축한 느낌의 어수선한 몇 번 물을 담았다 버린 늘어진 종이컵처럼 나는 혼자 힘없이 버려진 것 같다.
모두 바쁜 출근길 속에 어떤 아저씨가 울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길을 잃었어요. 버스에서 내렸는데 학교 가야하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요”
“그래? 학교가 어디니?”
“서울맹학교요.”
“그래? 알았다.”
“택시 여기요.”
우산도 없이 헝크러진 긴 머리카락에 옷이 비에 다 젖어 별로인 모습을 한 아저씨는 택시를 다급히 손짓하며 세운다.
“여기요 택시”
“이 아이 학교까지 데려다 주시오.”하면서 택시 조수석 의자에 툭 파란잎을 던지며 하는 말이었다.
“얼른 타라. 잘 좀 데려다 주시오.”
그렇게 말하고 그 아저씨는 다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택시 아저씨는 나에게 학교가 어디냐며 묻더니 학교 교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미터기에 얼마가 나왔는지 또 그 아저씨가 놓고 간 지폐가 얼마인지도 나는 모른다.
잘 보이지 않는 어설픈 세상 속에 혼란스럽고 놀란 마음만 가득히 느껴져 정신이 없을 뿐이다.
비오는 날이면 버스 타는 일은 정말 싫었다.
비가 오면 버스 안 창문은 뿌옇게 흐려지고 키가 작아서 높은 창문도 잘 볼 수 없는데 거기에다 눈도 좋지 않으니 이 고비를 넘기는 일은 정말 힘든 것이었다.
만약 거기서 천사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어떻게 됐을까?
처음 그렇게 낯선 곳에 나 혼자 남겨질 뻔한 그 일은 어린 나의 공포와 무서움이였다.
길 잃은 경험 한 번에 비 오는 날이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학교를 다녔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마운 아저씨 덕분에 비가 오는 날 위기모면하고 행방불명되지 않고 학교에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참 고마운 아저씨였다고 말한다. 복 많이 받고 있을 천사 아저씨 나의 수호천사였을까 감사합니다.
***
아버지도 아버지를 괴롭히는 괴물을 본 적이 있을까?
내가 어릴 때 아버지를 괴롭히는 괴물과 맞서 싸워야 했던 그날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에도 빨간 줄 그어질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렇게 운명이 흘러갔다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게 될 것일까?
총각 때부터 폐가 약해서 폐렴에 걸리고 심해져서 폐결핵까지 앓고 숨소리 거친 폐 하나 없으신 아버지의 인생도 순탄치는 아니했다.
어머니 아버지 둘 다 부모의 복이 없는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겨우 서울 올라와 공장 다니고 아버지는 손에 검은 구두약 묻히며 일을 하여 근근이
밥벌이하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동네 아줌마 소개로 어머니 아버지는 결혼하셨고 단칸방에서 숟가락 하나 가지고 시작했다고 한다.
검은 구두약 묻히며 땀 흘려 번 돈으로 입에 풀칠하고 열쇠 깎는 일도 배워서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를 먹여 살렸다.
아버지는 열쇠 깎는 일을 배우기 위해 지나가는 열쇠 장수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 눈썰미로 익히셨다고 했다.
어느 날이었다 평범하게 일상이 흘러가는 듯 싶은데 출장 나간 곳에서 아버지의 인생도 순탄치 않은 큰 점을 찍게 된다.
집 대문 좀 열어달라고 하는 젊은 아줌마의 요청에 그 집에 출장을 간 아버지의 일이다.
일주일이 지나가는 조용한 날 그 사건은 벌어진다.
어느 여자 집에 자물쇠를 열어 주려 아버지는 출장을 나갔고 열쇠를 열어 주고 출장비를 받고 아무 일 없이 집에 돌아온다.
일주일이 흘러 어느 날.
조용한 가게에 손님도 없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어와서 아버지를 경찰서에 끌고 가려 한다.
“권 씨 맞지요? 조사 좀 받으셔야 되니 경찰서에 같이 갑시다.”
“여보 이게 무슨 일이야.”
“당신들 왜 내 남편을 끌고 가려는 거야.”
두 분 다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는 경찰에게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경찰에 끌려가는 아버지도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도 황당한 기분만 들었을 것이다.
도둑질하고 강도짓 하고 행패 부려야 끌려가는 경찰서에 이유도 없이 아버지가 불려가니 동네 사람들도 의문만 품을 뿐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동네 여자가 집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고 누가 죽인 것 같다는 의문의 수사도 이루어지는 말들이 오고 갔다.
일주일 전 열쇠 출장 나갔던 그 집 여자가 죽었고 내 아버지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으로 아버지는 살인자의 누명을 쓴 것이다.
그 여자를 만난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고 했고 아버지는 그 여자를 죽였다고 범인으로 몰렸던 것이었다.
경찰서에 잡혀간 아버지는 취조실에서 말 못 할 고초와 협박을 당하며 고된 시간을 버텼다.
“그 여자 당신이 죽였지? 빨리 말해.”
“나는 모릅니다. 저는 안 그랬어요.”
“당신이 죽였잖아. 그 집에 간 사람은 당신 밖에 없어. 왜 죽인거야?”
온갖 굴욕과 협박, 정신없는 고초 속에 아버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마음 먹었다.
내 머릿속 괴물 녀석과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는 괴물은 실체가 없는 유령의 연기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는 버텼고 가족을 위해서라도 입 꽉 다물고 견뎠다.
어찌나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하는지 아니한 일을 했다고 자백하고 나오고 싶을 마음이 머릿 속을 휘졌고 다녔다.
어쩐지 어둑해지는 무렵 산언덕의 집에 둘째 미진이랑 나는 올라가고 있었는데 어떤 모르는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와 묻는다.
“너희들 어디 가니?”
“집에 가는데요?”
생전 아무도 어디 가냐고 누구도 물어본 적이 없는데 어두운 길 위에서 어떤 아저씨가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이상하고 수상한 그 느낌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왜 물어보는 거야.”
그 어린 시절 이상한 느낌은 지울 수 없어도 그 어떤 어른들의 일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다 우연히 열쇠 출장 나갔다가 세상에 살인자 누명을 쓰게 된 아버지라니 그때의 아버지의 심정을 내가 추측 할 수 있을까?
죄가 없는데도 감방에 들어가 몇십 년 살다 나온 어떤 아저씨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다.
감옥 속에서 젊은 세월 다 허비하고 늙어서 세상 밖에 나온다면 그것을 누가 보상해 줄 거며,
그 사람 가족도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 아버지는 누명을 쓰고 열쇠 출장간 죄로 다 범인으로 몰렸었다.
나와 동생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제일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 재수 없는 불행한 일을 겪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옆 가게 금약국을 하기 전 새마을금고 지점장으로 있던 아버지를 총각 때부터 알고 지내던 아저씨가 권씨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증언을 해주고 도움을 주어서 가까스로 혐의없음으로 풀려난다.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형사들이 우리 가족 몰래 우리 집을 감시하며 열쇠 가게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또한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았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생활을 했고 나중에서야 주변 상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집 여자를 죽인 범인은 남편이었다.
의심 많은 여자는 남편이 고용한 살인범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나중에 범인도 잡혔고 그 사건도 해결되었다.
그 집. 아버지가 출장 나갔던 집. 한 맺힌 여자의 죽음이 있는 어둠이 깔린 곳 그 길 앞으로 지나갈 때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고 한 서린 적막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서야 그 집이 아버지가 끔찍한 일을 당했던 재수 없는 집이라는 걸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다.
어쩐지 그 집 앞을 지나갈 때 뭔가 다른 썰렁한 것이 나의 촉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나만의 느낌이 맞아 떨어졌다.
졸지에 살인범으로 몰렸던 아버지는 끔찍한 그 시절이 치욕스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지금은 저 벽제 납골당 항아리에 고요히 잠자고 있는 사진 속 대머리 아버지와 박카스병이 보이는 모습만 유리 벽 사이로 남아있다.
우리 큰 딸, 우리 큰 딸. 걱정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저 하늘 위에서 편히 쉬고 계신다.
“아버지 나 어머니랑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값비싼 리무진 눈감고 타고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저 기억 속 홀연히 사라지셨다.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지켜보았던 나는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이제는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대머리, 아버지의 커다란 코를 볼 수도 만져 볼 수도 없네.
잊혀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아련히 숨 쉬고 있다.
***
지금 난 40대 중반이 넘어 시집도 안 간 노처녀로 살고 있는데 모든 것을 잃어 보기도 하고 천천히 조금씩 잃었던 것들을 되찾아 가는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그 무엇. 그것은 굳은 의지와 용기 나에게 앞으로 살아남을 날들을 위해 내 손에 아버지의 든든한 힘이 남겨 있다.
그 어떤 백과사전보다도 아버지의 삶이 내 안에 큰 가르침으로 당당한 나를 다시 서게 하였다.
길을 가다 보면 가끔씩 시끄럽게 앰뷸런스 차가 지나간다.
덜컹이는 딱딱한 침대 위에 누워 실려가는 모습. 안 봐도 뻔한 비디오가 내 그림에 그려져 있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다시는 나는 병원에 발길을 두지 않을 거라 결심하며 나만의 건강을 소중히 지킨다.
약해진 괴물을 데리고 사는 것도 때로는 잊어버리고 건강한 남들을 쫓으려다 그만 ‘아 괴물이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하고 체념을 한다.
이것은 내 어두운 동굴을 괴물에게 빼앗긴 적이 있기에 또한 그 괴물을 다 없애지 못하고 같이 동거해야 하는 나만의 운명이 죽을 때까지 있을 일이다.
내 동기 친구는 괴물에게 잡아 먹혀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부잣집 아들이었으니 온갖 치료는 다 해보았지만 큰 괴물 앞에서 백기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20세 좀 넘어 하늘로 간 그 친구. 나랑 떡볶이도 사 먹고 햄버거도 사 먹고 좋은 친구였는데 안타깝고 애잔한 기억 속에 그 친구의 그리움이 뭉게뭉게 지워진다.
나도 내 머릿속에 남은 굳은 종양을 무시할 수 없이 안고 살아야 하는데 누구는 나더러 더 달려보자 뛰어보자 하는데 그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또 한 번 쓰러지고 만다면 나이도 있고 회복하기 힘들기에 나는 안전한 곳까지만 가기로 하였다.
누구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만의 괴물 훈련 시키기 강습이 나를 만드는 계획과 목적이 되어 간다.
나는 지금 길 위에서 건강하게 걸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발걸음이 가벼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너는 현재 괜찮냐고 그 괴물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묻는다.
나는 내 안의 괴물과 늘 가위바위보를 하고 산다고 해야 할까?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 아는 이야기와 앞으로의 삶이 햇빛 찬란한 길 위에서 눈부시게 바람을 타고 흘러갈 것이다.
* 2026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참여자가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