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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실로암 칼럼] 나이마다 달라지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지석봉 실로암자립생활센터장)

조회수 28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6-02-09 좋아요 0

도서명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저자J.M.바스콘셀로스

출판사동녘

나이마다 달라지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지석봉 실로암자립생활센터장

 

  나는 50대초 시각장애인이다. 맹학교 초등부를 다녔던 1980년대 그 당시는 교과서 외에 점자책이나 녹음도서가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그 당시 나에게 유일한 기쁨은 이화여대 퀴비탄(시각장애 아동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아리) 누나들이 1주일에 한 번씩 책을 읽어 주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대학생 동아리 누나의 목소리는 책 그 자체였다. 누나가 제일 처음으로 읽어 준 책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였다. 활자로 읽지 못했던 나에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이야기이기 이전에 사람의 온기였다. 제제의 슬픔과 장난, 외로움은 이야기 속 장면이 아니라 누나의 목소리와 억양을 통해 전해졌고,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마음이 아픈 이야기”로 이 책을 기억했다.
  이 후 중학생 때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다시 만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조금 달랐다. 제제의 장난과 반항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고, 어른들의 폭력과 무심함에 분노가 앞섰다. 이때의 나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나이였고, 제제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나와 같은 편이었다.
  맹학교를 졸업한 뒤 컴퓨터 TTS를 통해 다시 접한 이 책에서는 제제보다 포르투가에 더 마음이 갔다. 말없이 곁을 지켜주던 어른. 조건 없이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던 존재.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소설은 불행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아이를 살려낸 어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30대에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더 이상 눈물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제제가 왜 그렇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시대의 가난과 구조, 어른들 역시 여유가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는 용서와는 달랐지만, 세상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50대 초반인 지금, 아이프리e도서관을 통해 읽은 이 책은 다시 나에게 말을 건다. 제제의 아픔보다도, 그 아픔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수많은 어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동시에 어린 시절 누군가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던 장면이 겹쳐진다. 그 누나들은 어쩌면 내 삶 속의 포르투가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의 나이와 삶,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 때마다 또 다른 모습의 제제를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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