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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2025 힐링하는 글쓰기] 정명섭 작가님 소설: 안녕하세요

조회수 45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6-01-23 좋아요 1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에 있던 백은영은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백은영에게는 막힌 공간에서 낯선 목소리를 들었을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 특히,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마치 갑자기 옆에서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백은영이 흰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정중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왼쪽 모서리에 들려왔다. 위에서 내리꽂혔기 때문에 157센티미터인 그녀보다 20센티미터 정도 높았기 때문에 대략적인 키를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다 로션과 스킨이 뒤엉킨 냄새가 느껴졌고, 땀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육체 노동을 하는 블루 칼라가 아니라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쐬면서 일하는 직업의 중년 남성 같았다. 엘리베이터의 손잡이를 잡은 백은영은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태어날 때부터 빛을 느낄 수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던 그녀는 세상 모든 게 낯설었고, 사람들은 특히 더 그랬다. 다행히, 상대방도 침묵을 지키면서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까지 대화는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상대방이 다시 말했다.
 “제가 열고 있겠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웅얼거린 그녀는 흰지팡이로 바닥을 더듬거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복지콜 택시를 타고 월령 시각장애인 복지관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야만 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는데 남자가 다시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백은영은 남자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흠칫 놀랐다. 지독한 어떤 냄새가 느껴졌다.
 ‘이 냄새는 죽음인데?’
 어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염을 할 때 맡았던 냄새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무단횡단을 하던 같은 반 아이가 차에 부딪혀서 그녀의 앞에 떨어졌을 때 난 냄새였다. 생선이나 고기가 썩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라서 많이 맡지는 않았지만 명확하고 선명한 냄새였다. 거기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맡을 수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백은영은 흰지팡이로 바닥을 치면서 아파트 현관으로 나갔다. 당장이라도 시체 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쫓아올 것 같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꾹 참고 걸어갔다.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바깥의 냄새와 소리들이 훅 다가왔다. 보통 때라면 잠시 멈춰서 냄새와 소리들을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녀가 나온 걸 본 복지콜 택시 기사가 인사를 했다.
 “주차장까지 모시고 갈게요.”
 일단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 백은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택시 기사의 팔을 잡았다. 뒤쪽에서 아까 그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백은영은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는 기척을 낸 복지콜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겼어요?”
 “방금 인사한 사람이요? 훤칠하네요. 키는 180 정도에 어깨가 좀 넓은 걸 보면 운동 같은 걸 하나 봐요. 턱이 약간 각졌고, 코가 우뚝하네요. 수술했나 봐요.”
 한참 설명을 해 준 복지콜 택시 기사가 덧붙였다.
 “요즘 저렇게 인사 잘하는 사람 드문데, 가정 교육을 잘 받았나 보네요.”
 “나이는 얼마나 되어 보여요?”
 “글쎄요. 한 30대 중반? 근데 요즘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모르겠네요.”
 더 물어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복지관에서 돌아온 백은영에게 설거지를 마친 활동지원사 이금주가 인사를 했다.
 “지금 왔어요?”
 이전 활동지원사와는 달리 서글서글한 성격에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어서 마음이 잘 맞았다. 백은영은 흰지팡이를 접어서 서랍장 위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은 복지콜이 잘 잡혔어요.”
 “다행이네. 순두부찌개 만들어놨으니까 있다가 먹어요.”
 “고맙습니다.”
 이금주가 손을 씻기 위해 싱크대의 물을 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손을 세 번 털고는 상부 수납장에 걸어놓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그녀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서 한숨 돌리던 백은영은 이금주가 이 동네에서 굉장히 오래 살았고, 발이 넓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 우리 동에 새로 이사 온 사람 있어요? 180에 어깨가 넓고 코가 우뚝하다고 했어요.”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이금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지난주에 8층으로 부부가 이사 왔어요.”
 “부부요?”
 “아이는 없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잠깐 말을 멈춘 이금주가 슬리퍼를 벗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부인이 안 보이네.”
 백은영은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느낀 진한 죽음의 냄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백은영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이금주에게 물었다.
 “8층 몇 호에요?”
 “이사 온 부부? 801호. 왜요?”
 “그, 그냥요. 안녕히 가세요.”
 내일 보자는 말을 남긴 이금주가 문을 닫고 나가자 백은영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해.”
 그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집 안에 숨긴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짙은 죽음의 냄새를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백은영은 그 후에 계속 그 남자와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마주쳤다.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는 여전했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리고 함께 온 부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백은영은 예의 바른 그 남자가 아내를 죽였을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물론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무슨 소리냐는 핀잔을 들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결국 백은영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일단 어디 사는지는 알았으니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하던 백은영은 유튜브를 듣다가 방법을 알아냈다. 전기 충격기로 도어락을 지지면 문이 열린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최신형이라면 안 되지만 백은영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넘었고, 도어락을 대부분 교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복지관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호신용 소형 전기 충격기를 구했다. 그리고 핸드백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호기심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을 품고 있던 어느 날, 복지관에서 돌아오다가 그 남자와 다시 마주쳤다. 남자는 외출을 하려고 밖으로 나갔고, 그 소리를 들은 백은영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엘리베이터에 탄 그녀는 8층을 눌렀다. 8층에서 내린 백은영은 왼쪽 801호로 지팡이로 바닥을 치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문을 만져서 전자 도어락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핸드백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옆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파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호흡을 한 백은영은 전기충격기를 전자 도어락에 갔다 댔다.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벨소리 같은 게 들리면서 덜커덕거리며 문이 열렸다. 백은영은 지팡이를 문틈으로 밀어 넣은 다음 손으로 밀었다. 플라스틱이 녹으면서 나는 매캐한 냄새 뒤로 어둠이 느껴졌다.
 “대낮인데도 어둡다면 커튼을 모두 닫은 상태네.”
 백은영은 어둠이 익숙했지만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둠은 그다지 친밀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집을 어둡게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죽음의 냄새는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백은영은 천천히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아파트 구조는 똑같았기 때문에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로봇 청소기 같은 게 부엌 앞에 있었고, 바닥에 카펫 같은 게 깔려 있었다. 백은영은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거실 너머에 있는 안방으로 걸어갔다.
 “여길까?”
 백은영은 안방의 장롱이나 침대 아래 남자의 부인이 죽은 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안방으로 향하던 백은영은 뒤쪽에 있던 현관문이 서서히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흠칫 놀란 그녀의 귀에 남자의 다정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그 순간 백은영은 실감했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죽음의 냄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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