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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2025 힐링하는 글쓰기] 정은교 교육생 소설: 아영과 아영

조회수 56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6-01-23 좋아요 1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아영과 아영


 창문 틈 사이로 바닷바람이 스며든다. 눅눅한 긴장과 졸음이 뒤섞인 여름 오후는 나른하기만 하다. 부산 바닷가에 있는 B여고의 고3 자습 시간이다. 같은 반에 같은 이름 두 명의 ‘아영’은 똑같이 90년 뜨거운 8월생이다. 나란히 짝이 되어 앉아 있다. 한 명은 창밖을 보고, 다른 한 명은 마음속을 바라보고 있다.
 마른 체형의 귀티 나고 차가운 표정의 구아영과 통통하고 장난기 많은 신아영이 짝이 되었다. 고3이 되어 처음 만났지만 두 사람 사이엔 소문으로 알고 있는 오해 섞인 정보들이 있다. 구아영은 넉넉한 집안 출신으로 새침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소문, 신아영은 뭐든 잘 먹어서 책상에 떨어지든 바닥에 떨어지든 잘 주워 먹는다는 뭐 그런 식의 소문을 들은 바 있는 정도다. 고로 서로의 인상은 그냥 별로다.
 신아영은 구아영의 책장을 연필로 툭툭 치며 말을 건다.
 “니 빼빼로 맛 나는 샤프심 써 봤나?”
 구아영은 고개도 들지 않고 시니컬하게 답한다.
 “그런 게 어딨노. 그리고 그건 맛이 아니라 냄새잖아.”
 신아영은 가볍게 순응하며 장난기 있게 받는다.
 “맞다 맞다. 내는 냄새를 잘 못 맡아서 그냥 맛으로 기억한다, 말이다.”
 구아영은 신아영을 이제야 쳐다본다.
 “내는 그 반댄데! 냄새라면 귀신같이 아는데, 맛은 그닥 관심 없다.”
 “니랑 나랑 다르네.”
 “난 뭐든 그냥, 뭐 살기 위해 먹는 기분이랄까?”
 신아영은 턱을 괴고 절대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말이 진짜 진심인지 의문이 든다.
 “야! 그건 좀 안 됐다. 세상에나! 그럼 치킨도 싫냐?”
 구아영은 웃음기 없는 말투로 신아영을 올려다보며 입꼬리에 힘을 주고 답한다.
 “내가 보기엔 니가 너무 심하게 맛있게 사는 거 같기도 하고, 좀 안 됐다.”
 두 아영은 동시에 피식하고 코웃음이 났다.
 “구아영! 니는 향수 가게 하면 딱이네.”
 “테스트 한번 해보자. 내한테 무슨 냄새 나노?”
 “니 아까부터 해물라면 냄새가 쪼매 진하데이. 음, 그니까 오징어, 조개, 다시마… 입냄새까지 존재감 쩐다. 니도 알재? 니 엉망인 거.”
 “와! 니 무섭다. 울 아빠보다 더 개코다. 인정한다. 명품코로, 띠로리!”
 다시 피식 웃음이 터지고 둘 사이엔 뭔지 모를 다른 듯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를테면 어이없지만 짠한 감정이랄까. 하지만 신아영은 바로 웃음기가 사라지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어젯밤 일이 자꾸 떠오른다. 신아영의 아버지는 언제나 변함없이 어제도 만취 상태였다. 멀리서도 누군지 알 수 있을 만큼 동네가 시끄럽다. 입에 담지 못할 걸쭉한 욕 다발을 난발하시며 집 안으로 들어오신다. 그때부터 엄마는 긴장 상태와 무방비 상태로, 무자비한 폭력 앞에 울 수도 없다.
 엄마를 방어하는 일은 엄마를 더 맞게 하는 일이다. 아영의 눈에는 눈물을 참으려다 보니 붉게 퍼진 눈두덩이가 뜨겁기만 했다. 반지하 집의 곳곳에는 핏자국과 술자국 얼룩이 범벅이 되어 있다. 아영을 향해 아버지의 욕설이 날아온다.
 “야! 이 년아. 니 아직도 학교 다니냐? 다 때려 쳐라. 거기 공사판 앞에 영도식당 주방 보조 구하더라. 내일 가 봐라. 쳐 먹기 좋아하니, 가면 먹는 건 문제 없을 기다.”
 아버지의 말이 먹성 좋은 딸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때론 아버지가 무섭고 화가 치밀다가도 측은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신아영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곁눈질로 보던 구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신아영의 표정이 평소와 다른 게 신경이 쓰인다. 고3 중반을 향해 가면서부터 둘 사이는 티격태격에서 와글보글한 사이가 되었다. 가끔은 든든하기도 했다.
 “봐라. 신아영! 니 수상하다. 표정이 썩었다. 니도 뭐 고민있나?”
 “니는 흥쟁이 아이가! 등수가 빠져도 흥흥. 지랄 맞은 선생이 인격모독을 해도 흥흥거리던 신아영 아이가?”
 “내는 신아영 니가 부럽다. 학교를 그냥 재미로 다니는 것 같고 말이다. 울 엄마는 서울로 대학 못 가면 얼굴도 못 들고 창피하시단다. 부모님의 목표가 무조건 SKY란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구아영은 쉬지도 않고 짜증 속사포 대사를 연거푸 날린다. 신아영은 구아영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신아영다운 말투가 툭 튀어나온다.
 “구아영! 니 서울 가서 강남스타일 되믄 좋을 거 같재?”
 “내가 보건데, 강남스타일보다 부산 갈매기 스타일이 더 멋쟁이 스타일이다. 부산 바다 냄새, 그리울기다.”
 구아영은 농담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굳은 표정이 된다.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난 답답한 집안 공기 벗어나고 싶을 뿐이데이.”
 신아영은 구아영이 그저 부럽다.
 “내가 보기엔 니는 복에 겨워 장구 치는 말로 들린다.”
 구아영은 한숨만 깊게 밀려 나온다.
 “우리 엄마 잔소리는 물폭탄 수준이야. 끊을 수가 없어. 무조건 잘난 척하고 살아야 한대. 엄마는 마음보다 포장지가 겁나 중요한 사람이거든. 아빠는 왕재수 가부장 덩어리야. 답답해.”
 신아영은 구아영의 이야기에 공감하긴 어렵지만, 굳은 표정을 보니 안쓰럽긴 하다.
 “헐! 우리 아빠랑 완전 반대다. 우리 집은 공부하면 욕먹는다. 니는 이해 가나?”
 “대박! 야, 둘 다 이해 안 간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이상한 나라에서 피신해 온 거네.”
 구아영과 신아영은 나름대로 고민이 깊기만 하다. 서로의 상황을 묵묵히 듣고 있다. 그저 이런 대화라도 할 수 있어 숨통이 튄다. 위로가 되는 것도 같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이며, 서로가 의지가 된다. 서로에게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공감 전류가 흐른다.
 마지막 모의고사가 있던 날. 두 아영은 표정이 좋지 않다. 구아영은 평소보다 낮은 점수로 심란하기만 하다. 신아영은 점수에 관심이 없다. 집으로 간다는 건 두 아영에게는 그저 지옥 같은 일이다. 둘은 눈이 마주치고 찡긋하며 눈신호를 보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요즘 자주 가는 ‘참새 방앗간’, 개친절한 편의점으로 서로를 의식하며 앞 다투어 뛴다. 신아영은 앞서가는 구아영에게 소리친다.
 “지랄! 니 반칙이다.”
 “니 지랄이라 캤나! 장난하냐!”
 개친절 편의점, 머리숱이 소중한 사장님이 테이블을 내주며 묻는다.
 “니들 오늘 모의고사 봤재? 표정 보니 꽝이네. 맥주라도 한 캔 오케이?”
 두 아영은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동시에 외친다.
 “아재요, 콜.”
 “한 캔 가지고 나눠 먹어라. 오늘 하루만 봐주는 기라. 아재가 니들 기분 안다.”
 편의점 아재는 맥주 한 캔과 오다리를 슬그머니 놓고, 센스 있게 카운터 쪽으로 들어간다. 신아영은 먼저 입을 연다. 아쉬운 마음에 말이 많아진다.
 “니, 진짜 서울로 대학 가는 거재?”
 “이제 촌티 벗고 더 세련돼 지겠네.”
 “서울엔 지하철이 9호선까지 있다더라. 거미줄 마냥 살벌하다는데, 정신 똑디 차려야지. 이상한 사람도 많고 무섭다 카더라.”
 구아영은 신아영의 호들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구아영 또한 미운 정이 들었는지, 맥주 트림이 코끝으로 몰린다. 구아영은 급히 말을 받아친다.
 “무섭긴 뭐. 지하철보다 더 무서운 게 인생이야.”
 “구양아! 그 말은 좀 멋있다. 나중에 내 먹방할 때 자막으로 써도 되나?”
 “신아! 니 진짜 그 유튜브 할 거임?”
 신아영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야심차게 주먹을 쥔다.
 “내는 국수 한 젓가락만 먹어도 느낌 온다. 어느 동네 손맛인지 안다.”
 구아영은 비웃듯 말한다.
 “말도 안 돼!”
 “진짠데. 대구는 면이 약간 얇고 부산은 국물에 멸치 향이 더 진하다. 서울은 MSG 맛이 좀 있고, 음식점마다 파워블로거 비위 맞추는 게 대세다.”
 신아영은 맛을 이야기할 때면 신이 났다.
 “니는 진짜 특이하다.”
 구아영은 신이 난 신아영이 조금은 멋져 보인다. 그건 어떤 열정 같은 게 느껴져서다. 자신에게는 없는, 그런 즐거운 감정 같았다. 신아영은 불쑥 구아영을 떠보듯 말을 건넨다.
 “구양아. 그지, 맞재? 그래서 니도 나 좋아진 거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구아영은 흠칫 놀란다.
 “뭐래, 진짜.”
 구아영 특유의 샐쭉함이 귀엽기도 하다. 신아영은 다시 농담을 건넨다.
 “우리 만남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개뿔일까?”
 구아영과 신아영은 서로를 보며 같은 대답을 한다.
 “개뿔!”
 두 아영의 개그 코드는 버럭 섞인 자멸모드로 귀결되지만, 그래도 찰떡같이 좋았다. 신아영은 겨울엔 찰떡 아이스가 제격이라며 싱긋이 침을 삼킨다.
 “구양아. 찰떡 아이스 먹고 싶지 않냐?”
 “누가 신아영의 먹성을 말리리오!”
 “사 올까?”
 “내는 찰떡 식감은 밸로다.”
 “하긴, 구양이 먹고 싶은 게 있긴 하냐?”
 곧 서울로 가 버릴 것 같은 친구가 벌써 그립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근데 내는 부산이 좋다. 바다가 있어서 좋다.”
 신아영의 말은 평소 같지 않게 사뭇 진지하다. 구아영 또한 평소와 다른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그니까. 니가 서울 갔으면 하루도 못 버티고 지하철에서 미아 됐을 걸.”
 “맞다. 내는 부산 바다 냄새 맡아야 사람 사는 것 같은 기분 든다.”
 두 아영 사이엔 다가올 이별이 천근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구아영은 신아영의 촉촉한 눈가를 바라본다.
 “언아더 아영, 신아영! 내는 신이 니 덕분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걸 알게 됐어.”
 “지랄, 니 고백하냐? 쪼매 기분 울렁댄다. 눈물 날 뻔했네.”
 “울지 마래이. 니 또 울다가 콧물 맛이 좀 짜다고 하면서 설명할 거잖아.”
 “맞다. 울면 눈물보다 콧물이 더 짜대이.”
 “우리 신이 못 말린다. 콧물 맛 리뷰할라 그라제?”
 어느덧 졸업식 날이 되고 구아영 부모님은 한껏 맵시를 뽐내며 교정에 들어섰다. 썩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표정이 압권이다. 그러나 신아영의 부모님은 예상대로 오지 않았다. 신아영은 씁쓸히 친구들 사이를 배회하며 너털웃음을 짓고, 졸업 축하 인사를 건넨다. 구아영 앞에 서서 애써 밝은 웃음을 짓는다.
 “우리 이제 진짜 갈라선다, 그재?”
 “아니, 우리 하나 더 하기로 했잖아? 잊었나?”
 신아영의 두 눈이 동그랗게 웃는다. 구아영의 입꼬리가 티 나게 실룩거린다.
 “그래. 우리 같이 하기로 했지. 대동단결! 의기투합! 앗싸라비아!”
 “너는 맛으로 리뷰하고, 나는 향으로 분석하는 ‘오감 푸드랩’ 콜라보 채널!”
 “진짜 할 거재? 약속! 도장! 복사! 코팅!”
 “너는 맛있게 먹고, 내는 심각하게 냄새 분석하고. 잼나겠다! 신개념 먹방 유튜브, 우리 둘 다 이 한 몸 던져보자!”
 두둥! ‘아영과 아영, 감각 폭발 먹방연구소’
 “제목부터 너무 자극 쩐다.”
 구아영은 신아영의 먹성을 믿고, 자신의 예민함이 얼마나 소중한 감각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생겼다.
 “근데 니도 이 감성 공감되재?”
 “맞다. 니 때문에 신난다. 그래서 웃는다.”
 두 아영의 눈은 여느 때보다 반짝거린다. 야심 찬 두 아영은 솔직함을 무기로, 신개념 먹방의 역사를 시작한다.

 이 영상은 화면 해설을 포함합니다.
 ― 에필로그
 ‘어느 동네 짜장면인지 바로 맞춰드립니다.’
 호기심 자극하는 썸네일이 적혀 있다.
 영상에는 두 여학생이 서로의 코와 입에 커다란 확대경을 들이대고 있다.
 두 사람의 이름은 구아영과 신아영이다.
 신아영이 먼저 말을 꺼낸다.
 “여러분, 이 짜장면은 분명 전라도입니다. 왜냐하면 혀에 달라붙는 맛이 다르거든요.”
 구아영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소스는 약간 생선적인 향이 돌긴 하네요. 확실히 남도입니다.”
 “봤죠? 우리는 감각 쌍둥이.”
 “이름은 같지만, 완전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서 가장 감각적인 먹방을 합니다.”
 “여기는 감각 폭발 신개념 먹방을 추구하는 ‘아영과 아영 먹방 연구소’입니다.”

 댓글창
 닉네임과 댓글 내용을 읽어볼까요?
 • 쪼다리: 신아영님 리액션 찐이네요.
 • 달빛사냥꾼: 구아영님 냄새 묘사 진짜 디테일 쩔어요.
 • 빨간쿠키: 빨간색 하트! 두 사람 케미 대박, 표정도 웃겨요.
 • 치킨왕: 우리 동네 옛날 통닭집 리뷰도 가능하신가요?
 • 요술봉: 요즘 감각 폭발 먹방 연구소 보는 재미로 살아요. 오래오래 해주세요!

 “구양아, 우리 구독자 만 찍었다! 한 달도 안 됐는데. 갬성이 통했나 보다.”
 “니 덕이가? 내 덕이가?”
 “덕덕대지 마라. 오리고기 먹고 싶잖아.”
 “못 말린데이, 신아. 니 땜에 살쪘다. 근데 나도 덕이가 땡긴다.”
 두 아영은 뭔가 모르게 웃음이 닮아 간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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