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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2025 힐링하는 글쓰기] 정은교 교육생 소설: 손끝의 온도

조회수 12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6-01-23 좋아요 1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손끝의 온도


 대작의 아버지는 파마머리로 K대학 내에서 ‘라면 박사님’으로 통했다. 라면 교수님을 따라다니던 당돌하고 야무진 제자와 사랑에 빠지고 불혹의 나이에 어린 제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대작이 태어나기 1시간 전, 아버지는 기막힌 태몽을 꾸었다. 아내의 산통 중 졸고 있던 아버지는 깜짝 놀라 일어났고, 그 순간 아내가 출산했다. 태양이 떠오르며 황금색 우주선이 힘차게 창공을 뚫는 꿈이었다. 과학자다운 꿈이랄까!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대작이야. 대작! 이 아이의 이름은 윤대작!”
 윤대작은 어제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알람보다 1시간이나 먼저 눈을 떴다. 어제 퇴근 시간 후 이어진 지섭과의 논쟁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누구보다 냉정해서 누구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그를 오랜 시간 쉼 없이 달리게 했다. 20건이 넘는 글로벌한 연구 성과로 대한민국은 과학의 세계적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K과학의 설계자’로 불렸다. 국가원수 급 대우도 받았다.
 “윤 박사, 이번 퍼펙트 K, 성격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더라구. 너무 완벽해서 매력도 없고 질려 버리겠어. 이렇게 밖에 안 되나? 휴머노이드란 말이 안 어울리잖아! 몇 퍼센트 부족한 느낌이야.”
 오늘따라 지섭의 말에는 가시가 돋아있다. 퍼펙트 K는 윤 박사가 국가적 특화 사업으로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름이다.
 “지섭아, 난 완벽한 걸 추구해. 그게 내가 원하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확신해. 지구라는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바로 완벽이야. 철저히 완벽한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나 윤대작의 작품!”
 어젯밤 지섭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대작은 거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눈빛을 응시했다. ‘송지섭’ 그는 대작의 MIT 동기생이며 연구의 결과를 낼 때마다 수많은 의견 충돌을 겪었지만, 대작의 섬세한 결과물 앞에 무한히 존경심을 드러내는 절친이다.
 이른 아침 한라산 기슭에 자리한 KS연구센터. 특수 유리 건물 안으로 대작은 위풍당당 들어선다. 연구실 앞에서 홍채인식을 마치고 들어가는 순간, 대작은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앞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날카로운 광선처럼 눈을 찌르는 듯했다. 전날 연구실을 나설 때, 수십 개의 충전기 발열 상태를 체크하지 못한 지섭의 실수였다. 위대한 과학자라기보다는 한 친구로서 인간미가 사라져 가는 그를 향해, 지섭은 처음으로 지적을 했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인지 연구실 뒷정리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대작이 눈을 떴을 때, 안개 속인지 암흑 속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시야가 흐려지고, 물건들이 전구가 깜박이듯 보이지 않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피로 누적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공포감이 대작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지섭을 비롯한 가족들의 웅성거림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윤 박사! 대작아! 내 말 들려? 나야 지섭이야.”
 익숙한 이름, 희미한 목소리.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히고 입이 아니라 머릿속이 고장 난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실려 온 지 3일이 지났다.
 “시신경이 손상되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회생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의사의 말은 칼처럼 가족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소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만 삼켰다. 반듯해서 끌렸던 그 남자, 언제나 ‘최선’보다 ‘최고’를 향해 달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 마음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결혼생활은 언제나 혼자였다. 연구밖에 모르던 대작은 기계 인간 같았다.
 대학 졸업 후 미국 NASA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었던 대작은, 소희를 만나고 그녀의 세심한 성격에 반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딸이 태어나고, 그는 그 바람을 담아 아이의 이름을 ‘나사’라 지었다.
 나사는 너무 예뻤다. 하지만 대작은 유치원 재롱잔치 때도 초등학교 졸업식도 귀한 딸이 그렇게 원하던 놀이동산에도 함께 가지 않았다. 가족과의 시간은 언제나 미뤄졌다.
 ‘다음에 가자.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시간 낼게.’
 그런 식의 약속은 소희와 나사에게 배신감과 불신으로 남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무너지고 있다. 소희는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는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뭐가?”
 “그렇게 완벽하려고, 그렇게 혼자서. 왜?”
 대작은 떨리는 몸을 침대에 기댔다.
 “나는 실패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내가 살 수 있는 건 그 방법뿐이었어.”
 “그래.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지. 대신 우리를 다 잃어 갔지.”
 의사의 소견은 여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작의 머릿속에 퍼펙트 K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자신이 만들고 키운 완벽한 로봇, 그 이상의 휴머노이드라는 대작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손길로 마무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병원은 더 이상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나사조차 아빠의 퇴원을 반기지 못했다. 엄마로부터 들은 실명 소식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지섭은 조용히 운전만 하며 그를 집까지 데려왔고, 거실에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작아. 미안하다. 내가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다니 나로서도 이해가 안 가. 하지만 변명은 하지 않을게. 언제까지나 너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할게.”
 대작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멈칫했다. 지섭은 감정을 추스르며 대작의 손을 잡고 다시 말했다.
 “대작아. 넌 정말 훌륭한 최고의 과학자야. 우리 여기까지면 괜찮아. 잘했어. 내려놓는 것도 좋은 판단이야.”
 “지섭아. 넌 몰라. 이 시각에도 세계는 우리보다 놀라울 정도로 앞서가고 있어. 내가 넘어지면 이 연구는 끝이야. 나는 완벽해야 해.”
 “근데 그게 누굴 위한 완벽인데?”
 그 말에 대작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는 오직 달리는 법만 알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편, 나사는 혼자 방에 앉아 아빠의 안경을 바라보다가 입체 조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사는 동양대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고, 현재는 졸업 전시를 준비 중이다. 뾰족한 실리콘 도구를 들고 언제나 연구실 책상 앞을 지키며 강하게 쥐였던 아빠의 손을 구현했다. 세세한 주름, 굳은살, 그리고 움켜쥔 듯한 손끝.
 ‘이건 나를 본 적 없는 아빠의 손이 아니라, 나를 한 번도 만져주지 않았던 손이야.’
 하지만 만들수록 복잡한 감정이 나사의 손끝에 스며들었다.
 ‘그래도 아빠는 한 번도 날 완전히 외면하진 않았던 것 같아.’
 대작의 손은 나사의 움직임에 따라 살아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아빠의 진심이 느껴지며, 손끝의 온도가 전해지는 듯했다.
 동양대 캠퍼스는 겨울 햇살이 내려앉았다. 예술관 안으로 가족과 지섭이 들어섰다. 나사의 졸업 전시회에 온 것이다. 지섭은 대작 대신 나사가 좋아하는 프리지어 한 다발을 건네며 흐뭇한 눈으로 축하를 보냈다. 소희는 대작에게 최대한 세밀하게 작품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지섭은 대작의 팔을 천천히 이끌어, 나사의 작품 앞으로 데려갔다.
 “이건 뭐지?”
 대작은 고개를 기울이며 손끝으로 입체 작품을 더듬기 시작했다. 차가운 조형물은 곧 익숙한 굴곡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안경, 세밀하게 표현된 손, 그리고 그 속에 숨은 감정이 손끝을 통해 전달되는 듯했다.
 “이거, 나사 거야?”
 곁에 있던 소희가 대작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나사가 만든 졸업 작품이야. 제목은 ‘보이지 않는 시선’이래.”
 대작의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는 조용히 입술을 달싹거린다.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운 건 줄 몰랐어.’
 나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빠, 이제는 나 좀 봐줄래? 눈 말고, 손으로. 이렇게!”
 대작은 아무 말 없이 나사의 손을 잡았다.
 나사는 그 손을 잡고 오래도록, 천천히 아빠 앞에 서서 아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최고의 과학자로 남기 위해 달려온 아빠의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윤대작은 ‘완벽한 로봇’의 개념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기술과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인간성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촉각 기반 로봇 연구에 다시 몰두했다. 연구실 한편에는 나사의 입체 작품이 대작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로소 그는 가족과, 세상과, 온전히 연결되고 있었다. 나사는 졸업 후 아빠의 손과 발이 되어 곁을 지키고 있다. KS연구실의 특별 배치된 보조 연구자이다. 자칭 ‘친절한 비서’라며 어느 때보다 기분이 업 되어 있다. 아빠와 이렇게 붙어 다니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흥얼흥얼 노래한다.
 “윤대작 박사님! 뭐하고 계신가요?”
 나사의 목소리는 사랑스럽고 다정하다.
 “나사야. 오늘은 퍼펙트 K의 이름을 ‘하트 K’로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하트 K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현할지 생각했지.”
 하트 K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나사가 섬세한 부분을 담당하리라는 걸 대작은 확신한다.
 “아빠! 하트 K라니, 이름이 너무 포근하네요. 인류애가 묻어 있는 멋지고 완벽한 이름이에요.”
 나사는 오늘도 아빠에게 비타민 토크를 날리며 상큼한 웃음을 보낸다.
 “그럼 오늘 저녁, 하트 K 이미지 관련 브리핑은 삼겹살집에서 하시는 거 어떠신가요?”
 뜻밖의 제안에 대작은 한껏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나사와 함께 서둘러 퇴근을 준비한다.
 “아빠 나 오늘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어.”
 “아니 요것 봐라. 우리 나사가 다 컸네. 그래, 가자. 아빠도 오랜만에 한잔 땡긴다.”
 나사는 아빠의 한층 따뜻해진 손을 꼭 잡고 유리문 밖으로 나선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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