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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2025 힐링하는 글쓰기] 엄다솜 교육생 소설: 언니 손끝에 꼭 다시 올게!

조회수 57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6-01-16 좋아요 0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언니 손끝에 꼭 다시 올게!


 '새장'이라 부르는 좁고 답답한 네모 집,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돌아다니는 풍경. 나도 모르는 사이 이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난 미래를 알 수 없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잘 키우던 새끼들과 짝을 잃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나의 긴 조생은 정말 다사다난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조생의 마침표를 찍을 날이 서서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더워, 더워 소리가 들리는 어느 날이었다. 먹이는 아주 조금 먹고, 간간이 물만 마시며 자다 깨다 무한 반복 중이었다. 어린 녀석들 수다도,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도 밀려오는 졸음을 막아주지 못했다.
 누군가 벽에 손을 갖다 댔다. 긴장되지만, 저항할 힘이 없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안 답답하니?”
 들리는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난 곳으로 몸을 돌렸다. 한 여자가 가까이 서 있었는데 언뜻 봐도 눈 모양이 달라 보였다. 사람도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할까?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안 움직여요? 어디 아파요?”
 다른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멀어서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갈 때가 되어서 그렇지 뭐.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고. 잘 먹지도 않고….”
 남자가 말했다. 저 남자는 나를 걱정하지도 않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는다. 어린 녀석들이 사람에게 간택 당하면 열어서 꺼내 주거나 아무도 없을 때 우리를 다 내보내고 집을 청소하는 정도.
 시끄럽고, 요상한 물건 투성이인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사람에게 간택 당하는 것 말고 없다. 어린 녀석들은 간택 당할 가능성이 높지만, 나처럼 나이가 많으면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에겐 사람이 제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지 않다. 야생으로 돌아가도 적응해서 살 수 없으니,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걸 아무도 모른다. 훈련이 잘 된 것으로, 그들을 싫어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든 살겠지. 숨이 붙어 있으면.

 “어이구, 저 녀석은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영 볼품이 없는걸.”
 “그러게. 그래 가지고 번식이나 제대로 하겠어?”
 “나 오늘 저 새 데려가야겠어. 나 아니면 누구도 저 새를 구할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툭툭 던지듯 말하고 지나가는 가운데, 눈이 특이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들끼리는 저마다 이름을 짓고 사는구나. 눈이 특이한 여자 이름이 세아라고? 그런데, 뭐야, 저 사람들 싸우는 거야? 우리만 싸우는 게 아니었구나! 사람의 싸움을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저씨, 얼마 드리면 데려갈 수 있어요?”
 “말 잘 듣고 건강한 새도 많은데. 진짜 저 녀석을 데려가겠다고요? 새장 문 열리는 소리에도 바짝바짝 긴장하는 사람이?”
 “그러지 마요. 왜 사서 고생해요? 어차피 만지지도 못하는 걸….”
 “얘 좀 말려 주세요. 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어쩌겠어요~ 이 학생 생각이 그렇다는데….”
 청소하고 밥 주는 남자와 여자까지 싸움에 동참하다니! 무슨 일이 나긴 났나 보다. 무섭지만, 구경할 만 했다.
 “얘는 이름이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얼마 못 살 텐데, 굳이 이름까지? 허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구먼.”
 두 마디 말 뒤에, 몸이 붕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두 여자의 모습이 가까이 보였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병원비는 어쩌려고 그래?”
 “걱정 마. 죽으라는 법은 없잖아.”
 죽으라는 법이 없는 건 맞을 텐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여자 둘이 걸을 때마다 집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한 명은 걸으면서도, “턱.” “계단.” “차 오니까 바짝 붙어.” 같은 말을 했다.

 “네가 손으로 잡아서 꺼낼 필요가 있니? 이 새장을 열어 놓은 채로 큰 새장 안에 넣으면 되잖아.”
 “와, 좋다! 어차피 지금은 얘가 적응해야 하니까 그렇게 해야겠어.”
 “그런데 이름은 정했어? 오래 못 살아도, 이름은 남기고 떠나면 좋잖아.”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사람들은 왜 우리에게까지 이름을 지으려고 할까? 그리고 왜 가까이 두고 싶어 할까? 참, 그런데 나 지금 간택 당한 거야?
 혼란스럽다. 동물의 세계를 잘 알 테지만, 우리끼리는 별다른 호칭이 없다. 경쟁자 아니면 동반자. 강한 녀석이 두목이고, 낙오자가 생기면 경쟁자가 줄어드는 구조. 강한 자만 살아남지만, 동반자랑 내가 낳은 새끼만은 살뜰히 챙기는, 그런 삶을 살았으니까. 그래서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얼핏 듣기로 머리카락 길고 목소리 높은 사람끼리는 언니, 언니 하던데. 나도 저 사람을 언니라고 생각해야 할까? 말을 배우지 않아서 직접 부를 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예콩이라는 이름, 적응이 안 된다. 평생을 이름 없이 살아서 어떤 이름을 불러줘도 그랬을 거다.

 이 집은 보통 집은 아니었다. 물건들이 말을 하고, 언니는 대답 없이 손으로 건드리거나 이것저것 누르기만 했다. 그렇게만 해도 원하는 대로 척척 움직여 주는 모양이다. 저렇게 말하는 물건이 있어 생존 경쟁에서 밀리지 않은 걸까? 속마음이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지만, 난 저 물건들처럼 원하는 대로 척척 움직여줄 자신이 없다. 갑자기 간택 당했는데, 부르면 바로 반응하고, 졸졸 따라다니고 몸을 맞대면 그게 비정상 아닌가?
 그런데 세아 언니는 음악을 참 많이 듣나 보다.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도 늘 음악을 틀었다. 적적하지 않아서 좋은데, 여전히 졸리고, 식욕이 없다.

 병원이라는 곳을 처음 갔다 온 뒤, 괜히 더 무서워졌다. 두 여자가 똑같이 알 수 없는 걸 먹이려 하니, 아무래도 이 집에 잘못 착륙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 탈출할 힘도 없고, 나가서 잘 살 자신도 없지만.
 제발, 강제로 먹게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싫다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다. 역시, 나보다 크면 다 무섭다.
 세아 언니를 돕는 사람이 없을 때는 더 힘들다. 주사기 이유식 양 조절을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 물그릇에 물 받아서 잘 들고 오다가 부딪쳐서 쏟고, 또 어느 때는 들고 오는 내내 기우뚱 기우뚱. 내가 그동안 본 사람하고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 지낼 수 있을까?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밥 주러 와도 화내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밥도 안 먹고 약도 안 먹으면 너 오래 못 산다고! 알아, 몰라?”
 세아 언니가 큰 소리로 말하더니, 내 몸을 꽉 쥐었다.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저항했다. 이럴 땐 늘 하던 대로, 부리를 써야지! 마트 주인아저씨가 겁쟁이라고 했으니, 힘 들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 마!”
 낮고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사방이 까매졌다.
 그러고 보니, 세아 언니의 최대 무기가 '말 폭탄'이었구나! 움직이지 못하고 쏟아지는 말들을 다 들어야 하는 순간, 난 알았다. 시끄럽고 말 많은 건 우리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말로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까매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리고 사방이 꽉 막혔다. 시끄러운 마트 안의 네모난 집 말고 다른 곳은 안 답답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강제로 착륙한 이곳은 숨구멍조차 없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아, 피 나잖아! 어떡하지?”
 물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언니는 손이 눈이라는데. 나 이긴 거야, 진 거야? 알쏭달쏭하다. 흥분도 아주 잠시 뿐, 날고 뛸 힘이 없어졌다. 이대로 모든 게 다 끝인가? 숨이 멈출 땐 멈추더라도, 여기서 나가고 싶다. 갑자기 툭 떨어져야 할 만큼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자기 몸의 열 배도 넘는 커다란 생명체가 소리를 지르면, 온 몸이 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을 거야.”
 그래! 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 말 폭탄이 무서운 건 그것 때문이구나!
 사실, 사람은 어떻게 위협해도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싸우면 이길 것 같은 느낌.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지만, 이번 시도는….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들 즈음, 내 몸에 천이 둘러지더니 천천히 떠올랐다.
 “예콩아, 미안해. 많이 아프고 무서웠지?”
 미안하다는 말을 태어나 처음 들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먹고 싶지 않은 것들은 어느새, 내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손이 천천히 넣고 있었으니까. “넌 잡고 있어. 내가 먹일게.” 같은 말을 분명히 했을 텐데, 난 왜 못 들었을까? 들었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천에서 탈출하고 보니, 원래 있던 곳이었다. 어떻게 내 위치를 잘 찾는 거지? 그리고 뭔가 붙어 있는 저 손,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걸 보면 내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저 언니가 항복할 것 같지 않다.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달라진다. 잠 자는 동안 어제 일이 먼 기억으로 가 버려서 그런가 보다. 나 일어났으니까 물이나 좀 줘.
 “어? 예콩아, 잘 잤어? 몸은 괜찮아?”
 사람이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특이한 집에 익숙해졌다. 병원보다야 나으니까. 좀 어설픈 세아 언니의 모습도 이젠 볼만 했다.
 그런데 오늘, 병원 가는 날인가? 천천히 식사를 하는데, 바깥에선 움직임이 분주했다. 병원에 가면 또 이상한 것을 타 올까? 제발, 그러지 말아줘! 난 괜찮다구!
 계속 아무 생각 없었는데, 몇 번 덜컹덜컹 오르락내리락 하니까 금방 끝났다. 세아 언니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손에 비닐이 없는 걸 보니, 그 이상한 것을 안 먹어도 되나 보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거 아니어도 충분히 힘들어.

 집 청소하는 동안은 밖에 나와 있었다. 힘들면 어디든 앉아 쉬고, 언니가 뭐하는지 구경하며 살짝 건드려 보기도 했다. 반응이 없는 걸 보니, 큰 문제 없나 보다.
 신기한 것 투성이다. 큰 네모에 작은 네모들이 꽉꽉 차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까만 네모를 톡톡 두드리는 세아 언니도, 언니의 긴 머리카락을 꽉 잡고 있는 저건 또 뭘까? 비슷한 게 가까이서 굴러다녀서 재빨리 가져오기도 했다.
 내 몸에 손이 닿는 건 여전히 무섭지만, 날아오를 힘이 생긴 뒤로는 날아서 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하니까 말 폭탄이 날아오지 않는다. 강제로 먹일 일이 없으니까 나를 위협하지 않는 것도 같다. 내 이름을 여러 번 부르는 정도.
 힘을 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힘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두 눈 다 안 보이는 세아 언니가 살아남았는데, 한쪽 눈이라도 보이는 내가 일찍 숨을 거두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 수명이 더 길다지만.
 조심조심 움직이면 모를 줄 알았는데, 언니는 다른 데 집중하면서도 내가 뭘 하는지 금방 안다. 먹고, 마시고, 목욕하는 순간마다 말을 걸었다. 큰소리로 말 폭탄 날릴 때랑 또 다르게 참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다 이해하고 알아듣지 못해서 일일이 답은 못 해주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이말 저말 하는 게 어쩐지 우리랑 닮은 것 같다.

 “예콩아~ 무슨 생각해?”
 옆에서 소리 안 들릴 땐 말 안 시키면 안 될까? 잠이 쏟아지는데, 슬쩍 말을 건넨다.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타이밍 못 맞추는 언니를 보면 조금 짜증이 난다.
 네모 집이 덜컹덜컹 움직이는 날은, 병원에 가는 날. 잊을 만 하면 병원에 가지만, 봉지를 들고 나오지 않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늘도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막 눈을 감았을 때 언니 목소리가 들린 거다.
 덜컹덜컹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도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졌다.
 “오늘도, 잘 할 수 있지?”, “착하지?” 그 말은 대체 왜 하는 걸까? 사람들 기준에 맞게 착해지지 않으면 같이 못 살까? 멀리서 바라봐주고, 이것저것 시키지 않고, 뾰족뾰족 모난 모습도 그대로 사랑해 주면 안 되는 걸까?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참 이상하다.
 그래도 아픈 거 없이 잘 끝나고 돌아와 언니를 올려다봤다. 소리 안 내고 안 움직이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겠지?
 “예콩이 왔어요.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졌네요. 오늘은, 보호자분 손에 한 번 올려볼게요.”
 “네? 갑자기요?”
 “새 키우면서 한 번 쯤은 만져 봐야죠. 지금은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아, 아….”
 언니를 공격할 생각은 없지만, 당황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사람은 왜 만져주는 대로 가만히 있기를 바랄까? 스쳐가는 질문을 뒤로 하고 언니에게 날아갔다. 병원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 혼자 탈출구를 찾을 수 없으니까.
 “어? 야야, 들어가. 이제 갈 거야.”
 어? 이제 보니, 살짝 놀라는 모습이 흔히 말하는 웃음 포인트. 집에 가면 부리로 장난 좀 쳐 볼까? 장난꾸러기 기질은 없지만, 놀려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병원을 나서자마자 장난 칠 생각은 사라지고 잠이 쏟아졌다.

 “이건 치울게. 잘 놀아.”
 이동장 접는 걸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손으로 뭐든지 척척 할 수 있었을까? 부리로는 저렇게까지 할 엄두도 못 내는데.
 세아 언니는 나에게 해줄 일이 끝나면 내 시야에서 바로 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착한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내 몸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언니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언니 손에 올라오게 하는 것, 밥이나 물을 갈아주는 것 말고 딱히 없어 보이지만.
 다음 날부터 갑자기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다. 살짝 놀라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손에 올라오게 하는 건 하루에 한 번이었다. 그 정도는 그냥 해주지 뭐. 그러면서 바깥 구경도 하고. 그런데 나 언제 이렇게 착해졌지? 몸이 건강해지면 여유가 생기나?
 싸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 따라다니거나 몸을 맞대고 있을 생각도 없다. 그래서 먹을 만큼 먹고 다른 데로 가는데, 언니는 더 바랄 게 없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 몸을 손으로 직접 만지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손이 눈이니까. 물론, 언제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은 준비가 안 되었다.

 똑같은 하루다. 언니가 음악을 틀어 놓고 나가면 나가는구나, 오면 오는구나~ 했다. 귀엽게 애교를 부리거나 말을 따라할 생각은 없다. 애교는 어린 녀석들이나 하는 거지 뭐. 언니가 알 리 없지만, 문 열리는 소리 들리면 살짝 내다보고는 있다. 백그라운드로 본 것이 있어서 그런 데에 더 익숙한 게 당연한 거겠지?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로 조생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된 걸까? 다시, 움직이는 게 힘들어졌다. 그런데 왠지, 내가 날아오고, 소리를 내야만 좋아해줄 것 같다. 아니, 내 몸이 저절로 사람 생각대로 맞춰진 달까.
 시간이 지나도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똑같았다. 특히 세아 언니는 잠깐 나와 주고, 놀이터에서 간간이 혼잣말이라도 하면 거기에 딱 맞게 반응해줄 뿐이었다. 귀찮게 하지 않아서 편히 쉴 수 있고, 잔잔한 음악을 들려줘서 심심하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지만, 요즘은 이 순간이 계속 이어질 것인지 끝날 것인지 잠깐씩 물음표를 던진다. 그리고 정말 갑자기 마지막 순간이 올 느낌이 확 덮쳤다.
 잘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너무 힘들고 춥고 무서웠다. 딱히 뭐가 바뀐 것 같지는 않아서 가까스로 밖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먹지도 못하겠고….
 세아 언니가 혼자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보니, 오늘은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안 오는 날인가 보다. 나 예콩이, 오늘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세아 언니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나를 어떻게 할까? 설마, 그냥 이대로 두는 건 아니겠지?
 시끄러운 마트에서 어린 녀석들 수다를 자장가 삼아 잠자던 때는 잃을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살고 싶다. 아니, 살아야 한다. 내 몸은 이제 겨우 사람의 사랑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물론, 언니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준 것도 한 몫 했지만.
 내 몸이 안전장치 없이 아래로 툭 떨어질 것만 같았다. 손목에 있다가 겨우겨우 손가락으로 옮겨 앉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걸 다 놓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이 순간, 의지할 데라고는 언니밖에 없는데….

 “야, 다셔. 얼른 들어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도, 말 폭탄이 무섭게 날아와 귀에 꽂혀도, 난 지금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사람의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는 피나게 물지 않았는데, 왜 그래? 제발, 가까이 있어줘…. 난 지금 너무 무섭단 말이야! 병원 가는 것보다 더 무섭다구!
 덜컹덜컹 하는 동안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머리를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주변이 하얗게 되고 가물가물했다.
 그 사이 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이동장 안으로 손가락이 쏙 들어왔다. 정신을 차려야 해! 아직은 내 이름에 익숙하지 않지만, 어쨌든 난 이제 시끄러운 데에 갇혀 살지 않잖아! 다른 짝이지만, 어쨌든 내 옆엔 세아 언니가 있잖아!
 마지막 힘을 모아, 손가락으로 올라갔다. 먼 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숨이 찼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어졌다.
 그래, 언니 마음대로 내 몸에 손대도 좋아. 더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난….
 내 몸 이곳저곳에 부드럽게 다가오는 촉감과 함께 물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내 짝꿍이, 잘 키운 새끼들이 서서히 멀어져간 날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세아 언니도, 그런 느낌일까?
 긴장감 없이 누분가의 손에 몸을 맡긴 게 처음이지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다음 생에 멀리서 만나게 되면, 내가 먼저 언니 손끝에 날아올게! 시끄러운 데서 탈출하게 해줘서, 맛있는 걸 먹게 해줘서, 편히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어.
 겨우 고개를 들어 세아 언니를 천천히 올려다봤다. 힘이 없어서 짹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택시 운전사와 이야기하는 언니의 물기 어린 얼굴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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