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32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5-12-05 좋아요 0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마음의 소리
‘우리는 마음에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의 어둠 속에 갇혀 모든 원망의 화살을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면 그 상처는 평생 아물지 못하지만 상처 대신 서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나는 오늘 먹방 브이로그 촬영을 마치고 팬미팅을 하기 위해 팬미팅 대여장을 알아봤다. 비싼 금액에 대여장은 시설도 괜찮았고 여러모로 깔끔했다. 저렴한 곳은 시설도 좋지 않았고, 안전 점검도 일일이 신경 써야 했다. 결국 저렴한 대여장보다는 비싸더라도 시설도 좋고 안전한 곳으로 결정했고, 팬들이 더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더 꼼꼼하게 팬미팅 준비를 했다.
그리고 팬미팅 당일, 메이크업과 헤어를 어디서 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집에서 할지, 샵으로 가서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할 차례였다.
“이제 꼼꼼하게 점검했지? 그럼 헤어랑 메이크업만 남았네.”
“음…. 그래, 꼼꼼하게 체크했고, 메이크업과 헤어는 강 실장님께 부탁해서 집에서 받아.”
“알았어.”
“아, 그리고 팬미팅 날 팬분들 하나하나 다치지 않게 알지?”
“아, 알았다니까.”
그렇게 효빈이와 팬미팅 대여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자, 문 열었어. 앉아.”
“응, 고마워.”
“안전벨트 매고, 왼쪽 커피홀더에 커피 꽂아놓았으니까 드셔.”
“오케이~”
내게 일일이 설명해 주는 이유는, 내가 저시력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효빈이가 옆에서 하나씩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주 안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화장실에 데려다 주면 볼일을 보고 나올 줄 알고, 손 씻고 기다리면 효빈이가 데리러 와서 차로 이동하곤 한다. 매니저지만 매번 이렇다면 힘들 텐데, 한 번도 화내지 않고 도와주는 고마운 내 친구이다. 효빈이는 내 절친이기도 하다.
집 앞
혼자 생각하던 중,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효빈이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운전석에 내려 조수석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내려.”
“말 좀 길게 하면 안 되는거야?”
“조심히 들어가고, 팬미팅 날 일찍 올게. 푹 쉬고 계셔.”
“알았어, 너도 푹 쉬어.”
“오케이.”
하루하루 날짜는 지나가고, 스케줄도 소화해 가며 팬미팅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400만 유튜버이지만, 늘 처음 같은 느낌처럼 설레고 긴장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팬미팅 당일, 집으로 강 실장님이 오셔서 나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해주시고, 드레스룸에서 옷을 골라주신 후 차로 이동했다.
“아, 긴장된다….”
“물 좀 마셔.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불안해.”
“응, 이따가는 존댓말 쓰시는 거 아시죠 매니저님?”
“알아요.”
드디어 팬미팅이 시작된다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벌써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캬악~~!!!”
“언니~~~~~!!!”
“안녕하세요 유리입니다~~”
“언니~~~~꺄악~~~~”
“방가워요~~~”
“저희도 방가워요~~~”
“오늘 저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시길 바랍니다.”
“네~~~~”
“오늘 여러 게임들도 준비했고, 간식들도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세요.”
“네~~~”
팬미팅은 마지막 순서를 향해 가고 있었고, 팬들은 너무 아쉬워하며 조금만 더 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마지막 순서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이제 마지막 순서입니다~”
“아~~~ 조금만 더해요~~”
“ㅎㅎㅎㅎ 저도 더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 저희는 다음에 또 만나요. 자, 오늘 마지막 순서는 여러분의 장기자랑 순서입니다. 1등, 2등, 3등 하신 분들에게는 선물 증정이 있겠습니다.”
마지막 순서인 장기자랑이 시작되었고, 20명의 팬들이 장기자랑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개그와 악기 연주도 들려주었다. 모든 장기자랑 순서가 끝나고 나는 1, 2, 3등의 심사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사결과가 나오자 나는 무대로 올라오기 전에 메이크업 수정을 하고, 심사결과가 적힌 종이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 팬들에게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러분, 심사결과가 나왔어요…. 많이 기다리셨죠?”
“네~~~~”
“너무 열심히 연습하셨고 열정도 대단하시고…. 또 실력들이 대단하셔서 심사하는 데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제 3등부터 1등까지 발표하겠습니다.”
모두 눈이 반짝이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이어서 심사 발표를 시작했다.
“3등은 ‘집이 좋아님’입니다. 아주 발라드를 너무 감미롭게 불러주셔서 저 또한 듣기 좋았습니다. 집이 좋아님, 올라오세요~”
“네.”
“집이 좋아님, 축하드립니다! 선물과 상금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 짝짝짝
“2등은 ‘핑크님’… 핑크님…. 여태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걸 몰랐네요. 핑크님, 올라오세요.” “예~~”
“자, 우리 핑크님은 제 매니저이신데요. 저는 핑크님이 춤추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한마디만 해주세요.”
“우리 BJ님께 보여드릴 일이 없었어요. 바쁘다 보니까….”
“아, 다음에 사적으로 보여주심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핑크님, 축하드립니다! 선물과 상금 드릴게요.”
“아싸~!!”
― 하하하
효빈이는 상금을 받으며 엄청 신나했다. 2등이라 신이 난 건지, 상품을 받아 신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상금을 받아 신난 건지 모르지만, 신나 보여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무대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자, 드디어 팬미팅 장기자랑 1등만 남았는데요. 바로바로 1등은 ‘푸하하님’! 축하드려요. 푸하하님은 댄스곡을 불러주셨는데 댄스와 노래가 아주 퍼펙트했어요. 또한 노래를 어쩜 이리 잘 부르시는지, 반할 뻔했어요. 푸하하님, 무대로 올라와주세요.”
“네~~”
“푸하하님, 가까이 뵈니 훈남이시네요.”
“감사합니다.”
“네, 여기 선물과 상금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세 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제 귀가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물론 모든 팬분들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언니, 노래해 노래해~”
모든 팬들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말씀하였고 나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노래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팬분들이 다시 말했다.
“노래해 노래해~”
“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우와~~”
나는 할 수 없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해버렸다. 솔직히 아는 노래도 별로 없긴 했지만…. 어떻게 하나 하고 망설이고 있으니, 효빈이가 올라와 나에게 말했다.
“너 잘 부르는 거 있잖아.”
“뭐?”
“커플….”
“알았어.”
효빈이는 다시 무대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연주자님께 커플 노래를 연주해 달라고 말한 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노래를 듣던 팬들은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우와~~~~~~”
“잘 부르세요 언니~~”
“누나, 내꺼 하자.”
노래가 끝난 뒤 잠시 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효빈이가 올라가 팬분들에게 대신 말했다.
“여러분, 지금 유리가 잠시 물을 마시러 갔어요. 그리고 메이크업 수정과 헤어 손질도 하고 다시 올라올 거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네~~”
그리고 유리는 다시 무대로 올라와 마지막으로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러분, 잠시 자리 비워 죄송해요. 그리고 오늘 만나 뵈어서 감사했습니다.”
“아~~~~”
“ㅎㅎㅎ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요, 한 분 한 분 팬싸인과 작은 선물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네~~~~”
“그리고 나가실 때 다치지 않게 천천히 이동해 주세요.”
“네~~~”
팬미팅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입구에서 한 사람씩 종이에 사인과 메시지를 적어 드리고 작은 선물을 드렸다. 팬분들도 유리에게 선물을 주시면서 한마디씩 말씀하셨다.
“언니,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봬요~~~”
“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도재훈입니다.”
“메시지는 어떻게 써드릴까요?”
“전화번호 적어주세요.”
“… 네???”
“전화번호 적어주세요.”
“제 전화번호여???”
“네.”
“아… 그건 팬 메시지를 적어드리는 건데요.”
“이게 제 메시지입니다.”
“아… 그건 좀 그런데요.”
“팬 메시지를 안 적어 주시는 건가요? 뒤에 팬분들 기다리시는데요?”
“아… 사적으로 팬분에게 전화번호는 안 드려요.”
“사적이 될지 공적으로 될지 어떻게 알아요.”
“어쨌든 안 돼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안 되는데….”
“뒤에 사람 많은데요.”
“흠….”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유리. 010-0000-0000
“여기 있습니다.”
모든 팬미팅을 마치고, 지저분해진 대여장을 정리한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로 이동했다. 효빈이는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고, 나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마셔.”
“고마워.”
“오늘 고생했어.”
“너도 고생했어.”
“응.”
나는 뒷좌석에서 차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내가 자는 줄 모르고, 효빈이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너 진짜 예뻤고 팬미팅도 정말 잘했어.”
“…….”
“처음엔 팬미팅 할 때 버벅거리더니 점점 실력이 늘더라~”
“…….”
“팬들도 점점 늘고, 이렇게 1년에 두 번 팬미팅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치? 유리야 유리?”
뒤를 돌아본 효빈이는 내가 자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집까지 운전만 했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고, 효빈이는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유리, 유리야 일어나. 집이야.”
“…….”
“일어나.”
“…….”
“유리야.”
“으응, 벌써?”
“응, 너 자는 줄 모르고 난 혼자 신나게 떠들었어.”
“진짜?”
“응. 얼른 내려.”
“어, 조심히 들어가.”
집으로 오자마자 바로 잠에 들었고, 일어나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거실과 안방 여기저기, 뱀 허물 벗듯 벗어 놓은 옷들과 팬들에게 받은 선물들이 나뒹굴어 다니고 있었다. 유리는 혼자서 말했다.
“우와…. 일단 밥부터 먹고 치우자.”
점심을 대충 챙겨 먹은 뒤, 어질러진 옷들과 선물들을 정리하고,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렸다. 소파 위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게 있다가 세탁기가 다 되었다는 소리에 다용도실로 가서 옷을 꺼내 건조기에 넣고 돌렸다. 이후 거실로 나와 팬들이 준 선물들을 풀어보고, 냉장고에 넣어야 할 것들은 냉장고에 보관했다. 편지들은 작은 글씨로 적은 편지와 큰 글씨로 쓴 편지로 분리했다. 작은 글씨로 적은 편지는 나중에 효빈이에게 읽어 달라 하려고 따로 정리해 두었고, 큰 글씨로 된 편지들만 내가 읽어보았다.
모든 정리가 끝나고 나니 저녁시간이 다 되어 배달을 시켜 저녁을 해결했다.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안방에 충전되어 있는 핸드폰을 가지러 방으로 향했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 건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 보니 처음 보는 번호였다. 유리는 번호를 확인하고 또 다시 혼자서 말했다.
“모르는 번호인데.”
모르는 번호라 전화를 받지 않고, 핸드폰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다시 쇼파로 나와 티비를 시청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저 유리님 팬인 도재훈입니다.”
“네?”
“아…. ‘집이 좋아님’입니다.”
“아~~~ 무슨 일이세요??”
“한번 뵙고 싶어서요. 시간 되실 때 뵙고 싶어요.”
“음, 저는 팬하고는 사적으로 뵙지 않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한번 만나주세요.”
“음…. 전화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전화로 말씀드릴 일은 아니라서요.”
“제가 매니저님하고 이야기한 뒤에 연락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바로 효빈이에게 전화를 걸어, 팬에게 전화가 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내 팬미팅 때 몇 번 와서 봤었대. 그 뒤로 호감이 생겼었고.”
“그래서?”
“사적으로는 만나는 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만나달라고 하더라고.”
“음…. 사적으로 만나는 건 곤란한데…. 위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안 돼. 절대.”
“어떻게 해? 거절할까?”
효빈이는 내 말을 다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다.
“음…. 그럼 매니저 동행 가능하면 만나겠다고 해.”
“안 된다고 하면?”
“둘이 만나는 건 절대 안 되고, 안전상 매니저 동행해야 한다고 해.”
“응, 알았어.”
도재훈님에게 매니저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을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만날 날짜와 시간, 약속 장소를 정한 뒤 문자를 마쳤다.
며칠 뒤 도재훈 씨를 만나기 위해 효빈이와 약속 장소인 카페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차가 밀리지 않아 30분 일찍 도착했고, 카페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도재훈 씨’라고 적혀 있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도착했는데요, 어디 계세요?”
“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어요. 연보라 원피스 입고 있어요.”
“아, 네. 찾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유리님.”
“네, 안녕하세요.”
“네.”
“무슨 일로 뵙자고 하신 거예요?”
무언가 사람이 무뚝뚝하고 소심해 보였다. 팬이기도 하고, 뭔가 이상하리만큼 어색하기도 했다. 어떤 말을 할지도 궁금했다. 작년에도, 올해도 봤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모든 팬분들은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틀을 깨버린 샘이니 나로서는 저 사람과 오늘 마지막으로 보는 자리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 도재훈 씨가 말을 걸어왔다.
“저…. 팬미팅 때마다 뵀지만, 유리님에게 호감이 생겼습니다.”
“네???”
“… 유리님을 좋아합니다.”
“갑자기요???”
“제가 소심해서, 좋아한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 당황스러워요.”
“죄송합니다.”
“음…. 저는 좀 혼란스러운데요.”
“지금 당장 저와 사귀자는 건… 아니에요.”
“아… 네.”
“저랑 몇 번 뵙고 결정해 주세요.”
“아… 생각해 볼게요.”
“알겠습니다.”
내 예상과 다르게, 갑자기 고백을 받아버렸다. 너무 놀라서 거절하겠다는 말을 못했다. 내 입에서 “생각해 보겠다”는 단어가 나온 것이 새삼 신기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될 때까지 고민한 끝에 도재훈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도재훈 님.”
“네, 안녕하세요.”
“저 내일 시간 되세요?”
“네, 가능합니다.”
“두 시, 그때 그 카페에서 봬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하루가 지나, 약속한 날짜가 되어 복지콜을 불러 카페로 향했다. 잠시 후 택시에 내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재훈 님이 오기 전까지 계속 고민하고 있으니 도재훈 님이 도착해 의자에 앉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생각은… 해보셨어요…?”
“예, 오시기 전까지 고민했어요.”
“어떤… 결과가 나오셨… 을까요?”
“저는 일단 한 달 정도만 만나보고 결정할게요.”
“아… 이주는 안 될까요?”
‘왜 이주일까? 한 달이면 되는 거 아냐? 이주 만에 호감이 생길 수 있는 걸까?’
답이 안 나와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왜요?”
“제가… 일 들어가면 잘 못 나가요. 집에서 일해요. 웹툰 작가에요.”
“그래요?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도재훈 님과 만나보겠다는 말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사람을 만나보면 알겠지 하는 생각에 결국 만나보기로 결정 내리고 나니 속은 편해졌다.
그래도 말하는 건 좀 답답한 스타일이어서 맘에 안 들긴 하지만 2주 정도 만나보면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서로 만나보기로 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정말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밖에 나가서 운동하거나 홍대에서 걸으면서 악세서리나 옷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도재훈 님은 반대로 집이나 카페에서 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일단은 2주의 시간 동안 나에게 많이 맞춰 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내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만나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도재훈 씨에게 모자 가게를 가자고 제안했다.
“여기 모자 파는 곳 구경하고, 카페 가셔서 좀 쉬어요.”
“네, 그래요.”
모자집에서 모자를 구입하고, 바로 옆집 악세서리집도 잠시 구경했다가,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에 그냥 지나쳤다. 모든 구경을 마친 뒤 카페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하다가 식사하러 파스타집으로 이동했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먹고 귀가할 시간이 되어,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네비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멘트가 나왔고, 도재훈 님은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 쪽으로 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도재훈 님께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저… 여기.”
“이게 뭐예요?”
“열어보세요.”
“어, 이거 아까 그 목걸이네요.”
“네, 맘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못 받아요.”
“편하게 받으셔도 돼요.”
“그래도….”
“부담 갖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음…. 일단 받아만 둘게요.”
“네.”
어느덧 2주일간의 시간이 흘러, 나의 결정만 남겨두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했다. 내일 마지막 만남이 될 때까지 계속 고민했다.
‘이러다 내 머리 터지겠다. 나도 정이 든 걸까?’
마지막 만나는 날, 처음 만난 그 카페에 가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재훈 님이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긴장한 것 같았다. 내게 차일까 봐 한가득 걱정하는 것도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먼저 오셨네요.”
“네, 오늘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셨어요?”
“네 어떻게 결정 나신 건가요?”
“네….”
“여기까지인… 건가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축 처진 느낌이 들었다. 나의 생각인지 아닌지, 솔직히 더 뜸 들이다가는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 잠시 생각 좀 하느냐고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고민해 봤는데요, 2주 동안 지켜본 결과 재훈 씨가 좋은 분이란 걸 느꼈고… 돌아다니시는 것보다 카페에서 쉬시는 걸 좋아하시는데, 저한테 맞춰주시려는 게 느껴졌어요.”
“네.”
“근데 저는 방송 일도 해야 하고, 나가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데 방송은 아니더라도 같이 밖에서, 지금처럼 돌아다니고 하실 수 있으세요?”
“최대한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할게요.”
“그럼 교제 시작해요.”
“네, 감사합니다.”
“네.”
교제하겠다고 허락하자, 아이처럼 기뻐하는 재훈 씨였다. 처음엔 경치 좋은 곳으로 데려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때로는 바다도 데려가 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 사람과 나의 성격 차이가 이렇게 큰 걸까 고민이 되었다. 나는 활기차고 나가기 좋아하는 성격이고, 재훈 씨는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다.
‘하…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나가자고 말하면 나갈 거라는 기대를 한 건 내 헛된 희망이었던 걸까? 화가 난 나는 재훈 씨에게 답답하니 나가자고 말을 해보았다.
“우리 나가요? 네? 나 밖에 나가고 싶어요.”
“그냥 집에 있어요.”
“나 밖에 나가고 싶어요.”
“나갔다 와요.”
“하… 같이 나가야죠. 혼자 나갔다 오는 게 무슨 의미예요?”
“그럼 집에서 게임할까요?”
“… 됐어요. 혼자 나갈게요.”
내가 밖에 나가서 데이트하자고 답답하다고 말하면, 겨우 한두 번 나가주고 그게 전부였다. 결국 머리 끝까지 화가 나 버린 나는 재훈 씨에게 폭발해 버려 따지듯 물어보았다.
“후… 교제하기 전과 후가 너무 달라요.”
“미안해요.”
“왜 안 나가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돼요. 답답하니까 말해봐요.”
정말 답답했다. 이유라도 알아야 속이 후련했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매년 내 팬미팅은 어떻게 왔어요?”
“처음엔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그다음엔 무슨 용기로 신청해서 보러갔어요.”
“그럼 나랑은 어떻게 사귀려고 한 건데요? 분명 나는 유튜버라 활동도 많다고 했고, 그거 이해한다고 했고, 맞춰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을 싫어한다니… 참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까? 어이가 없어 한참 가만히 있는 나에게 재훈 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미안해요.”
“왜 사람이 많은 게 싫은지 말해봐요.”
“솔직히, 어릴 때 놀림 받은 적이 있어요.”
“그게 무슨… 놀림 받았다고 사람이 싫다는 건 말이 안 돼요.”
“학교 다닐 때 뚱뚱하다고 놀림 받은 적이 있어요.”
“사실이에요?”
“네.”
하긴 나도 어릴 때 눈 때문에 놀림 받던 기억이 있어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을 싫어한다는 건…. 한참을 생각하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치만… 이 연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네???”
“집으로 갈게요….”
나는 결국 ‘당분간 보지 말자’는 말을 해버렸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는 내내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30통은 넘게 와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과 고민이 뒤섞여 머리가 아팠다. 나도 예전에 놀림 받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이해는 가지만, 저렇게 집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설득해서 치료받도록 해야겠다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저예요, 재훈 씨.”
“네….”
“치료 받아요.”
“무슨 치료요?”
“심리 치료 받아요.”
“싫어요….”
“나랑 안 만날 거예요? 만날 거라면 치료 받아요.”
“… 생각해 볼게요.”
“생각해 보고 전화 줘요.”
전화를 끊은 뒤 한참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돼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도 않고, 문자도 카톡도 보지 않았다.
나를 선택하느냐 헤어지느냐… 그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연락이 안 된 적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오랜만에 재훈 씨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야~!!!!”
“네???…?”
“왜 전화도 안 받아요~~~!!”
“미안요…. 생각하느라고.”
“… 걱정했잖아요.”
“정말 미안해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결정했을까? 설마 치료 안 받겠다고 결정을 했을까? 그렇게 결정했다면 나는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네, 치료 받을게요.”
“진짜, 진짜요, 정말이죠?”
“네, 저도 이제는 치료받고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고, 유리 씨랑도 계속 함께하고 싶고요.”
“알겠어요. 같이 치료할 곳 알아봐요.”
어려운 결정을 내린 후, 둘이 같이 심리상담센터를 다니면서 연극심리도 받고, 거울치료도 받으면서 하루하루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속에 있는 걸 비워내니 속이 후련하다고 그리고 작은 산부터 등산을 하면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속에 있는 상처들을 소리 내어 내뱉고 하산했다.
“후련해요?”
“네, 후련해요.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진짜요?”
“네, 어떤 일이든 다 도전할 거예요.”
“오, 대단해요.”
다음에는 사람들이 많은 전철역으로 가서 전철도 타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해서 도중에 하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이겨내야 한다”고 하셔서, 처음에는 여러 번 반복적으로 다시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하… 못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해야 해요.”
“그만할래요.”
“알았어요, 그만 가요.”
“힘들어요.”
“내일은 오늘 많이 다시 타고 다시 내리고 했으면 내일은 한번은 덜 타고 덜 내리고 해봐요.”
“알겠어요.”
쉽지 않았다. 두 번째 날에는 더 많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며칠 하다 보니, 그다음 날에는 한 번은 덜 내리고 또 한 번은 다시 타는 일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잘했어요.”
“하하.”
점점 전철 타는 횟수가 좋아지자 이번엔 버스를 시도했다. 버스도 전철처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했어요.”
“고마워요.”
“마셔요.”
나는 물을 건네며 힘내라고 응원해 줬다. 내가 일이 없을 때는 늘 함께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이제 운전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옆에서 잘 다독여 가며 연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터널이 문제였다. 터널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힘들어했다. 터널을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터널을 놀이동산이라 생각해요. 자동차는 놀이기구, 잠시 터널을 빠져나가면 놀이기구가 끝나서 ‘조심히 가세요’ 하잖아요? 안내원이 잠실 어두운 곳에서 총인가 먼지 쏘는 거 있잖아요, 그거라 생각해 봐요.”
“안 해봤어요.”
“음… 그거부터 해봐야겠다.”
“재밌거든요. 다음에 가서 해봐요.”
1년쯤 지나자, 터널 외엔 혼자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터널을 들어가야 하는 곳이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내원 멘트를 해달라고 했다.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전화를 받아 안내원 멘트를 해주곤 했다. 내가 바쁜 날에는 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내가 전화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안내멘트가 시작되면 출발했다.
“언제까지 이래야 돼요?”
“미안해요.”
또 1년쯤 지났을 무렵, 내가 이제는 안내원을 안 해 줘도 될 만큼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간혹 긴 터널에서는 전화를 해 안내원이 되어 달라 것 외엔 전화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어느덧 우리는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 지나갔다. 재훈 씨는 웹툰 작가를 병행하면서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자신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매번 학교에 관한 웹툰만 쓰던 재훈 씨는 이번엔 특별편으로 『마음의 소리』를 웹툰으로 올렸고, 웹툰을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제 웹툰 작가 아닌 심리상담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웹툰 작가는 본업에서 부캐로 바꾸고 심리상담사를 전문으로 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앞으로 심리상담사 열심히 해서 능력 쌓은 뒤에 유튜브도 해보고 싶어요.”
“이야~~”
“유리 씨는 새로 하는 일 잘 돼가요?”
“네~ 잘 돼가요.”
“우리 화이팅해요.”
“네, 화이팅해요.”
나는 작은 1인 엔터테인먼트를 차려, 나처럼 저시력 시각장애인 유튜버를 양성하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서로를 이끌어 주면서 응원해 주면서, 때로는 조력자로, 때로는 지지자로 함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연애 5년 차에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아직 식을 올린 지 2달밖에 되지 않았다. 서로 바쁘게 생활하면서,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상담하면서 어땠는지, 유튜브 촬영하면서 문제점은 무엇이었는지 토론 아닌 토론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부부 사이이지만 서로 존댓말을 쓰기로 하고, 싸울 때도 반말은 안 쓰기로 약속했다.
“아니, 그게 왜 거기서 나와요? 양말은 빨래 바구니에 넣으라고 했잖아요.”
“아차!!!”
“그리고 옷은 또 아무 데나 놓고 그래요.”
“미안해요.”
“빨리 세탁실에 가져다 놔요.”
“네.”
늘 내가 잔소리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투정 한번 안 부리고 들어주는 재훈 씨였기에 당당하게 잔소리할 수 있다.
“설거지 해 주세요, 재훈 씨.”
“네~!!!”
매일은 시끌시끌하지만, 점점 밝아지는 재훈 씨를 보면서 괜히 뿌듯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본인 입으로 말하곤 한다. 만약 치료 안 받겠다고 말했더라면… 나는 지금도 집에서 웹툰이나 그리고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유리 씨하고도 사귀지도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라고.
나는 늘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불평불만 없이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상처는 극복하기 힘들지만, 속에 있는 걸 언제까지 숨겨둘 수는 없다. 그 상처는 가슴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평생 그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곤 한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