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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2025 힐링하는 글쓰기] 심연숙 교육생 소설: 잘 맞은 로또

조회수 46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5-11-28 좋아요 0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잘 맞은 로또


 버스 정류장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한산했다. 오직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상훈의 몸을 움직이도록 세차게 불어주고 있었다. 제천역으로 가는 버스도 수도권과는 다르게 배차시간이 길다 보니 그는 춥다는 생각보다 이 시간 오는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차도만 쳐다보고 있었다. 반가운 버스는 그를 시간 여유 있게 기차역으로 데려다주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좀 녹인 후 기차에 올라 의자를 세어가며 그의 자리를 찾아 앉아 그녀에게 출발 메시지를 보냈다.
 한 달 전 유난히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정동진 선 크루즈를 예약하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녀는 내가 언젠가부터 한 번만이라도 마음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소망해 왔던 마음을 이루게 해준 사람이다. 물론 쉽지는 않았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쩌면 그리 눈치를 못 채는지 그리도 둔할 수 있는지 지금도 가끔 놀리기도 한다.
 그녀를 처음 본 건 ㅎ아웃소싱 회사에 이직 후 교육을 받으러 용인 본사로 갔을 때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같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에 더 눈길이 갔었던 것 같다. 같이 근무했으면 속으로만 바라왔지만, 그는 서울로 근무지가 정해졌고 아쉽게도 그녀의 이름은 회사 공동 인트라넷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 그녀가 파견근무를 나왔다. 반가운 마음을 누르며 일 핑계로 그녀의 옆에 가보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일부러 그녀의 앞자리도 앉아보았으나 반응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시각장애를 가진 직원은 우리 둘뿐이었지만 그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훈은 적당한 길이에 생머리에 늘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운동화에 크로스백을 메고 다니는 그녀가 점점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저녁 자리를 만들자고 여러 번 시도 끝에 그녀와의 사적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선배라는 호칭을 써주며 그녀도 제법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으나 야속하게도 한 달을 더 근무하고 용인으로 다시 근무지를 옮겼다. 아쉽지만 그는 일 핑계로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고 연락을 자주 시도했으나 그녀는 너무 바빴다. 일과 집안일로 그녀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나는 원하던 회사에서 재택근무도 가능한 자리가 나왔고 면접에서 합격을 하여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제천본가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아들하고 둘이 살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자리를 잡고 보니 잠시 잊었던 그녀가 생각났다.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서울이나 수원 올 때마다 연락을 해보았으나 그녀의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포기해야 하나 지치기도 하고 방법도 없어서 어떤 정보가 생길 때만 연락을 해주었다.
 그에게도 기회는 왔다. 20년도 어느 가을날 그녀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힘든 코로나 시절 그녀가 다닌 회사에 경기도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콜 업무가 계약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거의 1년을 개인 휴가도 미룰 만큼 직원들이 바쁘고 힘들어하며 관리자와의 갈등도 심해졌다. 결국 그녀는 상사들과의 여러 번 충돌 끝에 사직서를 내고 10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시원섭섭하게 나왔고 그에게 힘든 시기 일자리를 의논하기 위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장애인 일자리를 권했고 좀 쉬면서 뭐라도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그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다. 처음 시도한 장애인 일자리는 면접은 보았으나 예상대로 미끄러졌다. 다음으로 그녀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란 곳을 처음 알게 되었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찾아 기다렸다. 상훈은 그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놓치면 이제 다시는 이런 감정조차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개월을 계속 조언도 해주고 이것저것 도움이 될 만한 건 다 알아봐 주었던 덕인지 그녀도 내 연락을 다 받아주며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는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고백을 했다. 전에부터 네가 좋았다고 과정도 설명하며 선배 아닌 남친이 되고 싶다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겠다고. 그러나 그는 길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끌려 들어오는 듯한 그녀를 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그녀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다. 이혼 시기는 그와 거의 비슷하고 편찮으신 부모님 수발에 아들 키우며 이혼이라는 아픔까지 지칠 만도 한데 늘 씩씩한 그녀가 상훈은 안쓰럽기만 했다. 이제 조금 그녀는 거의 처음으로 가져보는 여유 있는 시간을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에 썼고 그는 본인과의 추억 만들기에도 시간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들은 부산 여수 전주 강릉 경포 정동진 속초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을 다녔다. 좋아진 세상 덕에 기차도 서비스를 받아 다닐 수 있었고 전국에 복지콜을 다 이용할 수 있기에 우리도 가능한 일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소원하던 반쪽을 찾아 더 이상 외롭지도 어느 누구도 부럽지도 않았다. 단 한 가지 그녀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입사하고 나서 그녀는 각막 손상이 심해지고 각막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부작용으로 온 안압 상승으로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였으나 이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안압이 올라가며 모든 기능이 약해지며 서서히 시력을 더 잃은 그녀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있는 힘을 다해 두려움과 매일 출퇴근길의 무서움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상훈이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 화도 나고 무능력한 자신이 싫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잘 버티고 있노라 말해 주는 그녀가 또 고마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어느새 도착한 청량리역 전철, 그녀를 데리러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얌전하게 그가 있으라는 곳에 흰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그녀에게 장난을 칠까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갑자기 소리를 내거나 잡으면 놀랄 그녀를 위해 좀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불러보았다. 빙긋 웃어주는 그녀. 그러나 한편 보이는 그늘이 신경 쓰였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다. 잠을 잘 못 잤는지 약 기운 때문인지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그녀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출출할까봐 햄버거를 사 들고 탔는데 그것도 다 먹지 못한 채 그녀는 잠이 들었다. 도착해서야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그녀에게 이따 맛있는 회 먹자고 설득하고 그녀가 타고 싶어 하는 레일 바이크를 타기 위해 걸었다. 추운 날씨에도 그녀는 그 차가운 바다 바람이 좋다고 원하는 바람에 칼바람을 맞으며 바닷길 한 바퀴를 돌았다. 추워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은 밝았다. 얼은 몸을 녹이며 복지콜을 타고 선 크루즈를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다시 산책로를 걷기 위해 나왔다. 찬 공기를 마셔가며 잡은 두 손을 주머니 속에 넣고 그래도 같이 있다는 것에 신이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볼이 얼 때까지 걷다가 선 크루즈와 연결되어 있는 어국이라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바다 위에 있는 음식점이라 이곳을 처음 왔을 때 그녀는 너무 좋아했다. 음식 맛도 좋았기에 다시 한 번 와본 곳이다, 볼 수는 없지만 느껴지기는 한다는 그녀의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회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하였다.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아신 직원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음식에 위치 등을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말해 주었고 덜어주시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입맛도 떨어지고 본 일이 할 수 없어서인가 그녀는 일 년 사이 살이 너무 많이 빠져 있었다. 뭐라도 잘 먹으면 그는 자신의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졌다. 매운탕까지 맛있게 먹은 그녀는 행복해 했다. 천천히 로비를 지나 편의시설을 한 바퀴 돌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 들고 숙소로 들어온 그들은 편하게 씻고 티브이 뉴스를 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하루 일과를 늘 궁금해하며 물어봐 왔던 상훈은 그녀의 말투만 들어도 기분이 어떤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조금만 기운이 없어도 그녀는 금방 목소리에서 티가 난다. 밝고 당당한 모습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는데, 요즘의 그녀는 너무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다. 다시 일어나보고 싶은데 지치기만 한다고 상담을 받을까도 생각한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천천히 힘을 내자고 다독여 보았으나 초조해 하는 그녀를 읽을 수도 있었다. 기다려 주자, 라는 생각에 살며시 손을 잡고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 내가 옆에 항상 있어 줄게.”라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침 깊이 잠든 그녀를 깨워 모닝커피를 손에 잡아주며 컨디션을 물어보았다. “ㄷ뚝배기해물탕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다행이다’라고 안심을 하며 그는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준비했다. 복지콜을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9층 가서 바람 쐬고 기념품 가게 들리자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 움직였다. 춥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이 싫지 않은 것이 그도 그녀처럼 겨울 바다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맞춰 가는 건가 아니면 자연스레 같아지는 것일까. 지인을 사다 주고 싶다며 텀블러와 작은 가방을 직원에 도움을 받아 사 들고 우리는 세 번 정도 가본 해물뚝배기 집으로 복지콜을 타고 움직였다. 날씨와 잘 맞게 따뜻하고 시원한 국물에 아주 풍성하게 들어있는 조개들을 둘 다 하나도 남김없이 먹고 서로 잘 먹었다며 뿌듯해했다. 강릉 카페거리를 안 들릴 수 없기에 늘 가던 중앙 ㅎ커피에 들어가 제일 좋은 2층 자리에 바다를 마주 보고 앉았다. 헤이즐넛 시럽을 추가한 아메리카노의 향을 음미하며 작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올해 마지막 추억을 남겨 보았다.
 이제는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상대방의 기분을 알고 다소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의견이 안 맞더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기에 어느 때부터인가 다툼도 5분이면 끝이 난다. 그의 옆에 항상 손을 잡고 있는 그녀를 보며, 같이 한지 5년이 되어 가며 우리는 한 자 한 자 잘 맞아가는 로또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마음의 부자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서로를 사랑하자”라고 살며시 말하며 강릉 기차역으로 향한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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