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50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5-10-24 좋아요 0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우리의 타임라인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혼자 자랐다.
또한 선천적으로 빛만 보이는 시각장애인이기도 했다. 혈연관계가 없이 혼자 자랐지만 주변인들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고 성장했다는 게 올바른 말일 것이다.
이런 그에게 마치 그의 세상에 태양이라고 불러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다. 중학교 2학년 흔히 중2병 시절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 시간. 눈이 보이지 않는 그를 돕기 위한 자원봉사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그 자원봉사자 선생님을 감각으로 느낀 건 서늘하고 도도한 분위기, 자꾸 맡고 싶은 향수의 향기, 차가운 목소리… 이것이 그녀를 만난 첫인상이었다. 3월 초, 봄에는 그와 그녀의 기싸움이 있었다.
그녀는 “나는 가는 애 안 잡고 오는 애 안 막아.”라고 했다.
그도 역시 “맘대로 하세요. 저는 상관없어요.”라고 했다.
계절이 흘러 여름의 어귀에 그와 그녀의 관계는 봄과는 매우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따스한 목소리로 그 아이를 불렀고, 늘 안온한 품으로 그를 안아주었다. 그는 혼자 살아왔기에 마음이 방어적이고 타인을 잘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문자는 다음과 같았다.
“나도 많이 사랑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선생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 사, 사랑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문자 내용은 봄과는 너무나 달랐고, 우리의 관계는 서로를 아껴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미술 시간을 보내면서, 그와 그녀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남색을 좋아하는 그는 쪽빛 색깔로 그림 그렸고, 찰흙으로 여러 작품들을 만들고, 다양한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여름이 조금 지나 방학이 되었고, 우리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만나지 못했다. 문자는 오고 갔지만 말이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맑은 날이네. 뭐하면서 하루를 보냈어?”
“친구들과 놀고 글도 쓰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선생님은 하루 잘 보내셨어요?”
“응. 나도 하루 잘 보냈어. 계절학기 들어서 정신이 없지만!”
“아, 진짜요? 쌤 힘내세요!” 사, 사, 사, 사랑해요.”
“웅. 나도 많이 사랑해.”
휴대전화가 들려주는 문자 내용이 그는 미소로 하루들을 마무리하곤 했다. 또 그녀가 바빠서 문자에 답장이 오기 전까지는 그와 그녀가 주고받은 문자를 들으며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곤 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가을로 접어들었고 방학이 끝나 그와 그녀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매우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포옹을 하며 반가움을 해소했다. 9월은 그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그녀는 그에게 케이크를 선물해 주었다. 생일 노래도 함께 불러주었는데, 절대음감인 그에게는 음정도 음도 잘 들려 '코드가 이상하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마저도 너무 고마웠다. 날이 추워져 갔고, 그와 그녀의 수업은 끝이 다가왔다. 그는 수업이 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그녀와의 만남이 종결된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손이 시린 겨울이 다가왔고, 마지막 미술 발표회가 다가왔다. 그때 무대에서 그의 작품소개를 한 것을 보고, 그녀를 그에게 “무대에서 나와 함께 만든 작품을 이야기하는 네가 멋있고 자랑스러웠어.” 그는 그렇게 말한 그녀에게 질문 한 가지를 던졌다. “너무 감사해요! 아! 그리고 혹시… 제가 따스한 태양이라고 부르고 휴대전화에도 그렇게 저장해도 될까요?” 그녀는 그의 연락에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고 답장을 보내주었다. “응 좋아!” 그와 그녀는 그렇게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생일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렇게 그의 중2병 시절은 안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그렇게 중3이 되었다. 그는 체력장을 하건 시험을 보건, 그 무엇을 하던 그녀에게 매일 문자를 보냈다. 혼자 자란 그에게 늘 사랑을 주는 그녀였기에 그에게 그녀는 가족과도 같았다. 그녀도 그에게 일상을 이야기하고, 그의 문자에 답장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가을 낙엽처럼 물들어 갔다. 서로가 없는 삶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하며, 그녀는 그에게 “너의 존재가 참 힘이 돼! 늘 내게 사랑한다 말해 주는 사람은 너뿐이야! 고마워!”라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중3의 나날이 저물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학을 준비해야 했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그래도 그녀와의 연락은 꾸준히 주고받았다. 그녀의 연락은 그에게 항상 힘이 돼 주었고, 그녀 역시 그의 연락에 많은 힘이 돼 주었다고 했다. 사실 작은 트러블도 있었다. 서로의 감정이 상해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적도 있고, 바빠서 서로의 음성을 듣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서로의 시침과 분침이 흘러 그는 고3이 되어 대학교를 준비하는 수능을 봤다. 그는 원하는 과에 합격했다. 그녀는 그를 매우 축하해 주었고, 함께 기뻐해 주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1월 그녀는 그를 만나 지난 고3 생활과 대학 입학을 축하해 주었다. 여전히 그녀의 노래는 음정도 코드도 맞지 않았지만, 그는 그저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함을 느꼈다. 그 후 그와 그녀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녀의 목소리와 문자를 들려주는 휴대전화는 보물 1호가 되었다. 대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그는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그녀가 당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준다며 그를 불꽃놀이 자리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빛 정도를 볼 수 있는 그였기에 이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는 캄캄한 밤이어서 불꽃을 조금은 볼 수 있었다. 반짝이는 불빛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고, 저 불빛처럼 그와 그녀의 관계도 늘 반짝이고 아름답길 소망했다. 불꽃놀이가 끝난 후 호프집에 가서 그녀와 그는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불꽃놀이의 여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다음에도 또 보기를 약속했다. 그날 이후 그와 그녀의 친구들은 활발히 만났다. 그녀의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의 생일파티를 해주기도 했다. 그와 그녀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약속을 잡아 만났다. 함께 향수 공방에서 서로에게 어울릴 만한 향수를 만들어 주기도 했고, 그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와 함께 별을 보러 가기도 했다. 별을 보러 가서는 그녀가 그에게 별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가 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함께 공유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후 그와 그녀는 같은 건물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출퇴근을 같이하며 저녁을 사 먹기도 하고, 함께 출근하기도 했다. 그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을 때에도 그녀는 항상 그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었다. 그는 싱어송라이터로 살아가며 그녀와의 관계에 대한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또 가끔 그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에게 글을 들려주기도 했고, 글을 쓰는 프로젝트 발표회를 할 때마다 그녀가 와서 자리에 있어 주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그녀는 인상이 선한 사람과 결혼을 했고, 그는 싱어송라이터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와 그녀는 서로의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 평생을 같이 나이 들어갈 것이다.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