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30 작성자 아이**02 등록일 2025-10-17 좋아요 0
도서명2025 힐링하는 글쓰기 작품집 마음이 문장이 될 때
저자백선순, 신나라, 심연숙, 안시아, 엄다솜, 정은교, 정명섭
출판사실로암점자도서관
[소설] 나이 들어가는 길목에서
“안녕하세요?”
현숙은 요양보호사이다. 그녀는 생활고에 지쳐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첫 고객을 온 맘을 다해 보살피리라 마음을 먹고, 경도 치매 어르신을 맡았다. 오후 한 시쯤 현숙은 배전함에서 키를 꺼내 열고 들어가서 어르신을 뵌다. 어르신은 항상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옅은 웃음을 지으셨다.
“오늘은 무얼 할까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현숙은 한 번 더 여쭤본다.
“동네 산책을 갈까요?”
“어. 그래.”
어르신의 운동화를 신기고 나간다. 동네 공원 운동기기에 올라서서, 몸통 돌리기를 하고, 공원을 두어 바퀴 돈다. 그렇게 바깥 공기를 마시고, 집에 와서 목욕시키고 간식을 먹이고 그날도 퇴근한다. 어느 날은, 동네 도서관에도 간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자리도 넓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같이 책도 보고 그날은 마음이 호강한 날이다. 어떤 날에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도 보고 시장도 돌아보고 살림도 거들어 준다. 하여튼 이때까지는 무료하지만 무탈한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공원 산책 후 땀이 나니 목욕하자 했는데 하니, 안 하니 큰소리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다행히 목욕시키기를 마쳤다. 거실에 들어가려다가 현관 신발 벗어놓는 곳에 딸의 신발이 보였다. 혹시 집에? 인기척은 없었지만 왠지 등골이 서늘했다. 어르신께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며 요양보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현숙님, 어쩐 일이세요?”
“어르신과 목욕 문제로 말로 티격태격 했습니다. 그런데 따님이 집에 계셨던 거 같습니다.”
그러자 실장님은 괜찮냐고 물어봐 주시고 마음을 다독여 주셨다. 현숙은 이 댁에 불편한 마음으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현숙은 순간적으로, 큰 목소리로 말하고 대상자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한 것에 대한 내 자신에 실망을 했다. 그 뒤에 대상자의 남편분이 연락을 해와 그동안 고마웠다며 자전거를 타고 와서 집 근처에서 만났다. 대상자의 남편분은 참치 세트를 안겼고 현숙은 감사함을 표했다.
얼마 뒤 현숙은 파킨슨 환자와 두어 분의 요양보호사를 거치면서 생각했다. 이 직업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몸으로 하는 직업을 하고 싶어서 식당에 취직을 했다. 현숙은 식당 일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버티기 작전을 썼다. 유치원 주방보조로 버텼고 처우가 좋지 않아 3년간 일을 하다 그만두었다. 퇴직금을 잘 계산해 주지 않아 사무실에 가서 따졌고, 사무원은 으레 관례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나는 원래 원칙대로 계산해 달라고 했고 말이 안 통해서 근무한 기록과 날짜 시간 잘라먹기 한 것들을 다 정리해서 노동청에 찾아갔다. 접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로 계산해서 내 통장에 잘 넣어주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순탄한 것이 없이 맨날 따져야 하고 그래야 해결이 되어서 힘이 들었다.
그동안 작은 곳에서 일한 것을 발판 삼아 현숙은 구내식당에서 일을 했고 아이들을 뒷바라지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지금은 작은 일이라도 하며 용돈을 벌고 싶어 한다 현숙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는 집 안으로 들어가면 왠지 모르지만 고요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났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일할 땐 반찬 냄새, 땀 냄새, 락스와 퐁퐁 냄새가 났고. 그래서 버스를 타고 퇴근할 때는 나에게서 반찬 냄새가 날까 봐 움츠러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일할 때는 생기가 있었고, 같은 또래가 많아 재미난 수다 향기가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데 웬 향기냐고 하겠지만, 젊음의 향기, 활력이 넘치고, 고등학생들 대학생들에게서 나오는 풋풋한 싱그러움 등이 좋았다.
현숙은 지금 시각장애인이다. 망막변성증으로 10년 전쯤 진단을 받았다. 복지카드를 받고 나서 복지관에서 재활교육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딸과 저녁을 먹고, 옥상 텃밭에 물을 줄 겸 같이 올라갔다. 그녀는 딸과 지나온 세월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은 조금 시각이 남아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딸의 도움을 가끔 받는다. 받을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특히 집 밖에서 행동할 때는 타인에게 도움을 많이 청한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잘 도와주신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따뜻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인식할지 궁금하다.
7월의 어느 여름날에 현숙이가.
* 해당 글은 2025년 실로암점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힐링하는 글쓰기'의 교육생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