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파란시선 55권. 고광식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공동묘지에서 "죽음을 답사하고 있"는 모습이나, 틀림없이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의학 실습용으로 기증된 시신에게 건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향한 시인의 시선에는 어떤 집요함마저 느껴진다. 특히, 제3부에 배치되어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현실의 단면들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때 역시 시인은 죽음의 문제를 피해 가지 않는다. 이 같은 특징을 들어 표현하자면, 고광식 시인은 이 시대의 죽음들에 대해서 생생한 목격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체적인 경험으로서 닥쳐올 죽음에 대한 태도는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것을 하나의 기준 안에 두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죽음은 때로 우리의 이성적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기도 하고,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게 만들어 주는 계기(하이데거)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고광식 시인의 <외계 행성 사과밭>을 읽게 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직면하게 될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고광식 시인은 우리가 일상적 모습이라고 생각해 왔던 장면들을 죽음의 순간으로 확대하면서, 발전의 목표 아래 숨겨 왔던 자본주의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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